돌아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마친 후에야 비로소 마음을 풀어내는 것이 가능한 일들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꽃다운 친구들'(이하 '꽃친')이 그랬습니다. 올 한해 '꽃친'(1기)에서 글쓰기 및 보조 교사로 일하면서 '꽃친'에서 하는 일과 마음가짐에 대해, 또 제 인생에 대해 글을 써보려 했다가 펜을 내려놓은 적이 몇차례 있었던 것이죠. 왜 그랬을까요? 현재 진행형의 과정 속에서 무언가 매듭짓고 의미를 찾는 것이 힘들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번번이 실패한 제 인생에 대한 해석이 여전히 부족했던 탓일까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1기 '꽃다운 친구들'이 12월 26일 '안녕식'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꽃친' 안녕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저는 1년 간의 활동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마지막 모임에서 '꽃치너'(꽃친을 구성하는 11개의 보석들)와 부모님들, 선생님들이 서로 나눈 웃음과 눈물이 내려놓았던 펜을 다시 들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꽃친 활동을 제의받고 보조교사로 지원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천편일률적인 한국의 교육 상황에서 대안적인 활동으로 의미가 있겠다. + 나에게 함께 활동할만한 시간적, 정신적 여유도 있으니 무리가 없겠다. + 원래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즐겁게 활동할 수 있겠다. + 크지는 않지만 활동비도 있으니 용돈 벌이도 할 수 있겠다.' 지금 돌아보면 '꽃친'은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자평합니다. 여러가지 고려사항은 부족함없이 만족스럽게 채워졌고, 고려하지 않았던 셀 수 없는 '덤'까지 얻었습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사실 '꽃다운 친구들' 안에서 우리 한국 교육의 대안적인 흐름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 충격 고백일지 모르겠지만, 좀더 자세히 말씀드릴테니 놀란 가슴 다독이며 들어주세요ㅎㅎ '정규 교육'이라는 거대한 물결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은 항해를 시작한 우리는 매일, 매주, 매달 무엇을 할지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 나누며 결정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지금 '특별한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하루하루 불안정하지만 마지막 종착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기를 염원하면서 꽃친호가 난파하지 않도록 분주하게 뛰어다니기에 정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거의 모든 경험이 기대와 상상보다 더 현실적이고, 일상에 가까웠습니다. 거기에는 땀냄새, 슬픔, 고단함, 삶에 대한 걱정들이 있었습니다. 꽃친호가 바다에 떠서 항해를 하는 동안 '특별한 무언가를 하자'는 구호는 소용이 없었습니다. 제가 처음에 가지고 있던 '거창한 일을 해야 한다'는 마음 가짐을 고쳐먹은 것은 잘한 결정이 되었습니다. '굳이 대안이 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있는 그대로 주어진 상황을 즐기자.' 오히려 우리의 여정에는 11개의 각기다른 개성을 지닌 아이들이 있었고, 꽃친과 시간을 함께 나눈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자기 삶을 어찌 만들어 가야하나 고민 많고 분주한 오늘입니다. 올 한해 제게 주어진 감당할 수 없었던 큰 복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 게다가 아직 그 가능성이 완전히 표현되지 않았고, 잠재력을 가꾸어 얼마든지 위대한 인생으로 꽃필 수 있는 인생들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항해가 끝나고 우리가 거쳐 온 항로를 다시 돌아봤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분명히 우리가 항해하기 전에는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무명의 바닷길이었는데, 이제는 지도 위에 어엿하게 '꽃친로'라는 항해길이 새겨졌습니다. 첫 출항이라 지금은 보잘 것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많은 분들께서 그 여정에 주목해주셨습니다. 아무리 머릿속을 뒤져봐도 저에게는 꽃치너들과 여러 선생님들의 웃음소리만 가득한데, 정해진 길로 가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특별한 길로 여행을 떠나 결국에는 완주해 낸 특별한 사람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대안적인 흐름'은 우리가 그렇게 되려고 애쓸 때가 아니라, 눈앞의 현재를 전심으로 살아내고 났을 때 어느새 우리 뒷편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모험이 끝나고 그 모험이 나에게, 또 우리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일은 귀찮을 수 있지만, 더 고귀한 것을 내 인생으로 수용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보다 먼저는 무사히 모험을 마친 우리 모두 서로를 축하하고 격려하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저는 활동을 하는 동안 '꽃친은 어떤 존재일까, 무슨 의미를 가질까' 자주 생각해 왔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년간 꽃친을 하면서 제가 발견한 꽃친의 임무는 '한 사람이 자기 인생을 스스로 발견하고 스스로 가꿀 수 있기를 염원하고 힘 닿는대로 지원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자신이 가진 본연의 색깔대로 살고 있었다면, 꽃친은 그 사람이 자신의 본연의 색을 더 명확히 발견하고 앞으로 더 힘차게 나아가도록 하는 동력이 되고 싶었습니다. 반면에 누군가 자신의 색깔이 아닌 남이 입혀 준 색깔대로 살아왔다면, 그가 이 사실을 깨닫고 돌이켜 자기 색을 찾도록 도와주려 했습니다. 가령 평생 자신의 색이 파란색인지 모르고 빨간색으로만 살아온 사람에게 초록색도 있고, 파란색도 있고, 노란색도 있다고 알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먼 미래에 '꽃친이 아니었다면 나는 평생 빨갛게 살아갈 뻔 했다'고 말해주기를 꽃친은 바랐습니다. '그때 그 시절, 그 사람들과 거기에 없었더라면..'이라고 회고해주길 꽃친은 바랐습니다.



 이 부분이 제가 꽃친을 하고 있는 꽃치너들에게 가졌던 가장 큰 부러움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제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모른 채 꽤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음의 소리를 내는 법, 그것을 듣는 법, 그리고 그것을 포착해서 현실 속에서 가꾸는 법 모두 알지 못했습니다. 똑똑하니 의사하면 되겠다는 이야기에 당연스럽게 이과로 진학했고, 대학교 전공도 제일 그럴싸해 보이는 '전자공학'으로 선택했습니다.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등 따뜻하고 배부르게 사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으니까요.) 그러다 몇가지 결정적인 계기(신체적 아픔, 충격적인 신앙 경험,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절망감)가 한꺼번에 몰려왔고 23살에 저는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성장통을 호되게 경험했습니다. 세상에 대한 탐구와 나 자신에 대한 탐구가 이어졌고, 신에게 수많은 질문을 쏟아내고 의미를 찾기 위해 방황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발견한 '나'라는 사람은 생각을 구성하고 글로 풀어 내는 일에서 행복감과 성취감을 얻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일을 통해 가치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가져왔던 신앙이 얼마나 허울에 가까웠는지, 오로지 나만 생각했던 이기적인 사고관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도 꽃친 같은 경험이 있었더라면, 조금이라도 더 일찍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과정을 겪었더라면, 고통스러운 성장통의 경험없이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었을 겁니다. 저는 꽃치너들에게 저같은 삶이 반복되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가능케하는 이상한 생각, 자신도 틀릴 수 있음을 알게 하는 다양한 생각, 너무 다른 사람들을 품는 넓은 생각'을 꽃치너들이 경험하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를 함께 읽으며 글쓰기 수업을 했습니다. 우리는 아슬란과 그가 창조한 나니아, 그리고 나니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수많은 이야기를 진실로 믿기로 약속했습니다. 판타지의 힘은 그것을 진실되게 믿을 때에야 우리 눈앞에 현실이 되어 펼쳐진다는 것을 꽃치너들이 알기를 바랐습니다. (사실 우리가 무언가를 믿지 않은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요.) 저는 제가 믿는 나니아를 꽃치너들도 믿기를 바랐습니다. 나니아 이야기는 새로운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근육을 키워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니아를 믿는 사람은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고 그것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우리는 글쓰기 수업동안 나니아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이야기에 흠뻑 취해 웃고 떠들다보면 우리 모두가 아슬란의 품 속에서 뒹구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솟아나는 수많은 질문들에 각기 다른 답변을 나누었습니다.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고 그것을 글로 다듬어 내는 훈련도 꾸준히 이어갔습니다. 동시에 현실의 한계도 고려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꽃치너들이 일상에 대한 일기를 쓰면서 자기 마음의 소리를 듣기를 바랐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기술을 터득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글로 표현해 낼 수 있으면 그보다 더 값진 결실은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주어진 특권을 발견했습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이리도 내밀하고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그런 점에서 엄청난 경험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뒤이어 이런 질문이 뒤따랐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특권이라면 내가 꽃치너들에게 1년동안 한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훌륭한 인생의 비결을 알려주는 대단한 일이었을까? 아니면 틀린 맞춤법이나 고쳐주는 보잘 것 없는 일이었을까? 결론은 둘다 아니었습니다. 제가 했던 일은 수많은 질문을 꽃치너들에게 던지고 그들이 더 넓고 다양하게 볼 수 있도록 망원경의 방향만 이리저리 옮겨 주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자기 내면의 소리, 하고싶은 말을 글로 표현하는 기술만큼은 함께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자신을 글, 그림, 음악, 음식, 춤 등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저도 글쓰기에 있어서 고민이 많고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저는 꽃치너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쓰고 싶었습니다. 글쓰기 수업은 저를 위한 과정이기도 했던 거지요. 마지막으로 나니아 연대기를 읽으며 더불어 읽고 더불어 상상하며 함께 글쓰는 것이 가진 '연대의 힘'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계속될 '꽃다운 친구들'이라는 연대기 속에서 첫번째 꽃친으로서 함께한 '연대'기를 쓰기를 바랐고, 그 꿈은 꽃친 문집(꽃친 오디세이 : 시간이 묻고 꽃친이 답하다)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함께일 때, 더 빛난다' 그것은 꽃친의 모든 활동이 의도한 바이기도 했습니다. 정해진 방향없이 각자의 스타일에 맞게, 마음을 크게 열수록 지천에 널린 보석들을 더 많이 얻어가기를 선생님들은 소망했습니다. 그래서 각 인생들의 방향을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알록달록 총천연색 경험 속에서 귀있는 자 듣고, 눈 있는 자 보고, 마음이 있는 자는 자신을 찾도록 돕는 것이 꽃친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함'의 가치를 깨달을 때 우리는 모든 살아있는 것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도 업신여겨도 될만큼 하찮은 존재는 없고, 어떤 경험도 전심을 다해 겪어냈다면 헛된 경험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마음가짐 말이에요. 그렇게 믿고, 배우고, 성찰하고, 수용한다면 분명 멋진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지난 일년동안 '선생'이라는 직함을 달고 일했지만, 돌아보면 언제 선생이었는지 언제 학생이었는지 구분이 가질 않습니다. 꽃치너와 세상은 언제나 저보다 지혜롭고, 더 경이로운 존재였으며, 더 순전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겠습니다. '꽃친의 프로그램과 선생님들이 꽃치너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는가?'에서 '꽃치너들이 어떻게 세상과 어른들을 변화시켰는가?'로 말이지요. 1년간의 행복을 선물해 준 '꽃친'에게 감사드립니다.



박진우 | 꽃다운친구들 1기 글쓰기 지도, 나니아연대기&사회학 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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