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안녕? 安寧식

2017.02.03 16:52

안녕! 안녕? 安寧


방학이 일 년이라면, 방학이 일 년씩이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시작한 채윤이의 긴 방학이 끝났다. 12월26일, '라스트 콘서트'라는 이름으로 꽃다운 친구들이 준비한 공연과 함께. 1년 여 전에 가족들 다 함께 모인 ‘방학식’으로 꽃친의 문을 열었었다. 그렇다면 라스트 콘서트는 ‘개학식’인가? 아니다. ‘안녕식’이라고 한다. 다시 오지 못할 꿈 같은 일 년의 방학 안녕! 긴 쉼을 마치고 새롭게 만난 열 여덟의 시간아, 안녕? 무엇보다 헤어짐이 아쉬운 꽃친들과 가족들의 평화(Shalom)을 비는 안녕이다.


가족 공식 청소년 백수로서 쉼의 권력을 남발하던 채윤이에게 마지막 12월은 레임덕의 시간이었다. 엄마 인내심이 바닥이 난 듯. ‘올해만 지나 봐라. 이제 늦잠이라곤 없다(뿌드득 뿌드득).’ 아이는 아이대로 얼마 남지 않은 꽃다운 나날 하루라도 허비할 수 없다는 듯 더 많이 놀고 자는 것에 조바심을 냈다. 게다가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더 만나려고 작당을 해대는 꽃친 일당과의 단톡은 끊이지 않았다. 라스트 콘서트를 위한 밴드 연습, 연극 연습 때문이라고 하는데 실은 그것도 놀기 위한 명목이려니 싶었었다. 솔직히 큰 기대 없이 ‘이젠 끝이다’ 하는 마음으로 간 라스트 콘서트였다.


‘여행, 꿈, 친구’라는 제목의 연극이 시작되자마자 참회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 작품이었구나. 작품 활동으로 바빴구나. 정말 그랬구나!’ 미안함의 쓰나미가 밀려왔다. 수줍어 비비적대는 목소리와 몸놀림, 그러나 자기 배역을 자기답게 소화해내는 당당함. 그 묘한 조화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비행기 열 대가 작은 무대를 꽉 채워 날아다닌다. 각자 자기의 궤도를 따라 비행하되 전체로는 하나의 행위예술 작품 같다. 이 장면, 마음의 카메라에 오래 남을 한 장의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 이어지는 밴드공연에서는 꼬치너들 자작곡인  ‘꽃다운 친구들에게’가 연주되었다. 세월호 안에 있던 꽃다운 선배들을 기억하는 노래이며 동시에 이 땅의 모든 꽃다운 친구들을 향한 노래였다. 

‘벌써 일 년이 지났네요.... 벌써 이 년이 지났네요.... 사랑한다고 많이 할게요. 웃을게요. 잊지는 않을 게요’ 





마지막 곡 ‘촛불 하나’ 부를 즈음에는 멤버들 몸이 제대로 풀렸나보다. 흐느적흐느적 리듬 타는 팔다리 하며 돌아가면서 부르는 랩 좀 보소. 1년 전 방학식 때의 그 아이들 어디 갔니? 가족소개 하러 나와서 몸만 비비 꼬던 애들, 경직된 표정 떨리는 목소리로 허공만 바라보던 애들, 온몸을 갑옷으로 무장한 듯 뻣뻣하던 그 애들 다 어디 갔니? 일 년 동안 긴장이완 제대로 된 것이다. 공연이 끝나자 기대도 없이 외친 앵콜, 앵콜, 앵콜! 몇 초의 망설임도 없이 채윤이와 지인이, young 재즈피아니스트 둘이 나섰다. 네 개의 손이 한 피아노 건반 위에서 즉흥 캐럴송 연주를 하는데.... 어머, 1년 전 그 비포 꽃치너 김채윤 어디 갔니? 가족소개 때 앞에 나가는 거 싫다고, 남다르게 소개하여 주목받는 건 더 싫다고 며칠 전부터 온 집안을 전쟁통으로 만들었던 김채윤 말이다.

라스트 콘서트에 부모님들도 한 무대 하시라는 주문을 받았다. 한 무대 하되 편지 낭독 같은 것은 사절이란다.(네가 태어나던 날이었어.... 아련아련 오글오글^^) 부모들 나름대로 심기일전하여 야심찬 계획 세워도 보았다. 트롯 풍의 캐럴 부르기, 우리 아빠 버전 히든 싱어.... 등. 무대에 올리지도 못한 장황한 계획을 내놓으면서 깔깔깔깔 시간을 다 보냈다. 이것은 흡사 중고등부 시절에 문학의 밤 콩트 짜던 분위기이다. 첫 부모 모임 때 서로 어색하도록 예의 바르던 그 엄마 아빠들 어디 갔나요? 결국 조신하게 노래 한 곡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 됐지만 엄마 아빠도 실은 노는 게 제일 좋았다.

‘꼬치꼬치’라는 즉석 토크콘서트, ‘무한도전’이 울고 갈 예능감 넘치는 꼬치너 해외여행 영상에 푹 빠져 베트남과 홍콩을 헤매는 사이 진짜 마지막 시간이 되었다. 샘들이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아이들이 샘들에게 전하는 진심 가득한 감사패 전달식이다. 아이들 한 명씩 무대로 나가 꽃친 샘들과 허깅을 한다. 나란히 서서 아이들 한 명 한 명 끌어안는 황병구&이수진 대표님 부부를 오래 바라본다. 일 년 동안 저 철부지 망나니들 보듬으며 맘 고생 몸 고생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길을 찾다 길이 된 사람들. 수진 샘이 어딘가에서 했던 강의의 제목이다. 길을 찾다 우리 꽃친 가족들에게 길이 되어준 사람들. 정작 자신들에겐 꽃길이 아닐 터. 없는 길 내는 고생을 자처하는 저 분들은 누구인가? 조금 전 부모합창으로 부른 노래의 가사가 답을 하는 듯하다. 설왕설래 끝에 정한 부모들 합창곡은 황병구 님 작, <누구나 삶의 시작은 작구나>이다.  

  

누구나 삶의 시작은 작구나

작은 시작은 그 소리조차 없구나

소리 없는 삶을 몰라 하는 이들 

그들도 삶의 시작은 작구나


지금도 우리 시작은 작구나

작은 외침을 듣는 이들도 적구나

적은 무리됨을 기뻐하는 이들 

그들과 우리 시작은 작구나


높이 떴을 때 더욱 작아지는 해처럼

깊이 잠길 때 더욱 소리 없는 바다처럼

작은 친구야 소리 없는 벗들아

높게 살자 깊게 사랑하자 누구나 삶의 시작은 작구나


일 년 동안 채윤이가 하는 꽃친에 대해 같은 설명을 수도 없이 해야 했다. 왜 학교에 안 다니는 것인가? 홈스쿨링인가? (아닙니다) 꽃친이 대안학교냐? (아닙니다) 때론 길고 어떤 땐 간단한 설명 뒤에는 ‘대단합니다. 깨인 부모네요’ 와 같은 반응이 흔하게 되돌아오곤 한다. 칭찬인 듯 아닌 듯, 마음의 거리가 순시간에 멀어지는 싸한 느낌은 그저 기분 탓일까? 하고 싶은 많은 말을 삼킨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대단히 비장한 결단은 아니었습니다. 저도 당신처럼 아이를 사랑하되 가끔 소리 지르고, 당당하고 싶지만 더 많은 시간 두렵고 불안한 대한민국 엄마일 뿐. 막상 쉬어보니 대단한 일도 아니고요.’


1년 쉰다고 아이의 인생이 대단히 뒤쳐지지 않을 걸 알았다. 마찬가지로 꽃친 1년으로 아이의 인생이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1년을 함께 한 엄마 아빠들과 저 노래를 부르다 보니 어쩌면 이 가사는 우리의 1년이다. 이 거대한 입시경쟁교육의 세상에서 빠져나와 그냥 멍 때리고 쉬는 열한 명이 되는 것은 얼마나 작은 시작인가. 작아서 미미하여 불안하고 두려운 길. 그리고 1년의 끝에 다시 새로운 시작 앞에서 섰다. 우리는 여전히 불안하다. 노래의 가사처럼 우리의 시작과 끝은 이렇게 작고 미미하다. 그럼에도 우리 아이들의 샬롬,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의 안녕을 위한 작은 선택에 후회없다. ‘작은 친구야, 소리 없는 벗들아 높게 살자 깊게 사랑하자’하는 선동을 뿌리칠 수 없다. 


우리 꼬치너들, 어느 새 벗이 된 꽃친 가족들, 고마운 샘들 이제 정말 안녕(安寧)!



정신실 | 꽃다운친구들 1기 김채윤 엄마 / 2기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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