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란 어떤 사람인가? 나는 학부모로서 어떻게 살아왔나? 꽃다운친구들이 이 시대에 왜 필요한가? 이 시대에 학부모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수많은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고 남편과 함께 밤마다 토론하고서 나온 결과물이 아래 영상에 담겨있습니다. 

학부모 주체성이라는 주제로 경기도교육연구원으로부터 발제를 의뢰받고 몇 날 몇 일 씨름한 덕분에 꽃친 운동의 의미를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낼 표현을 

찾아낸 것 같습니다. 조만간 글로 잘 다듬어 올려보렵니다. 우선 영상으로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멈출 수 있는 용기

2016.10.27 12:33

나라전체가 뒤숭숭한 시절이지만, 오랜만에 수다 한 편 올립니다. 

격월간지 민들레 107호 <멈출 수 있는 용기>에 꽃다운친구들 이야기가 소개되었거든요.  

또 한번의 클릭이 귀찮으신 분들을 위한 배려로 전문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링크도 있구요. http://bit.ly/2eHLRXH  




[꽃다운 친구들방학이 일 년이라니!]

 

이수진 

‘꽃다운친구들’ 대표. 사회복지와 가족치료를 공부했다. 건강한 가족공동체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어 스스로 가족 컨설턴트라

이름붙이고 학교, 도서관, 복지관 등에서 강의와 상담을 하고 있다.

kochin@brightfund.org



이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

 

  “용돈 아껴 써라”, “어디 학원이 좋다던데 거길 다녀라”, “쟤랑은 놀지 마라”, “지금부터 딱 한 시간만 놀아라.” 자녀를 겨냥한 부모의 명령충고훈화를 다 모아본다면 가히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인생 지침서(라고 쓰고 잔소리 종합선물세트라고 읽는다)’가 될 것이다학습은 물론이고 경제사회문화종교까지 다루지 않는 분야가 없는 것 같다이게 다 아이 잘되라고 하는 거다소중한 내 아이니까 일거수일투족 관리해주는 거다이러는 엄마도 피곤하다자기 일 희생하고 하는 거다옆집 아이에겐 그런 참견 안 한다는 말도 덧붙여가며 말이다그런데 이런 훌륭한 지침서를 가진 부모들도아이가 서너 살쯤 돼서 싫어!”라는 말을 달고 살거나 모든 동사 앞에 을 붙여 안 먹어” “안 자” “안 사랑해라고 말할 때의 당혹스러움을 기억할 것이다딱 청개구리 같던 시절그땐 제아무리 저항을 해봤자 금세 힘센 부모의 무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기에 그 모습이 오히려 귀여웠다그러나 소위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아이가 보이는 저항은 요 녀석 봐라당돌하군’ 정도를 넘어 부모로서 위기감마저 느끼게 한다.


며칠 전 우리 집에서도 모자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아들이 할아버지할머니친지들로부터 받은 특별용돈을 모아둔 통장에서 마음대로 돈을 꺼내 쓰지 못하는 것에 항의하면서 내 돈인데 왜 내 맘대로 못 해왜 엄마는 나를 과소평가해나도 알아서 잘할 수 있거든?” 이라고 했다전에도 아들이 이런 식으로 몇 차례 항거한 적이 있지만 매번 이 현명하신 엄마의 지침에 굴할 수밖에 없었는데이번엔 아들의 말에 무게감을 느낀 엄마가 자존심상 한두 번쯤 우기다가 결국엔 아들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게결국 네 돈인데미래를 위해 모아두는 편이 좋을 거라는 엄마의 판단을 믿고 따르라 했네언젠가는 네가 알아서 하는 거라고 마음먹긴 했지만 정작 그 언제가 언제인지는 나 도 참 막연하구나.’ 속으론 이런 생각을 하며.


이렇듯 자녀를 믿지 못함에서 비롯된 통제는 믿어주기로 작정하지 않으면 모드를 전환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그래도 아이들의 시기별 저항적 몸부림 덕분에 부모도 수시로 각성하고 나이가 들어도 계속 삶의 태도를 전환하게 된다. 21년째 엄마 노릇을 하면서 나름 전환하는 법을 배우며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 5년 터울의 둘째 아이는 쉽게 키울 것 같은데그렇지만도 않다마음의 부대낌은 시시때때로 새롭기만 하다이 일이 있고 나서 가만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학기 중에는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므로 자유로운 시간은 두어 시간을 넘기기가 어렵다주말과 방학에는 보충학습선행 학습각종 영양가 있(다고 믿고 싶은)는 체험 등으로 꽉 짜인 스케줄에 자유시간을 빼앗긴다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고수험생만큼 비장한 각오로 만들어진 일정표를 따라 살아야 하는 아이들을 목격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그러고 보면 물질만이 아니라 시간도 아이들의 것이 아니다.

 


참을 만한 멍 때리기의 비밀

 

  2012년 2월에 중학교를 졸업한 큰아이는 고등학교 배정을 보류하고 일 년 동안 긴 자체 방학을 가졌다당시에는 이름도 생소했던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학교 공부에서 잠시 떠나 진로탐색을 위해 일 년 동안 관심있는 일을 체험해보는 프로그램아이가 왜 공부하는지 모른 채 고교 3년을 고생스럽게 보내게 하긴 싫었던 엄마 귀에 매우 솔깃한 정보였다)를 개인 차원으로 적용해 볼 야무진 속셈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공부하는 목적과 의미가 생기리라 기대했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그런 시간을 갖기는 어렵다고 생각했기에충분히 여유 있는 시간을 누리면서 그걸 찾아보지 않겠냐고 던졌고이 제안을 받아들인 딸은 학교에 가지 않고 홀로 긴 방학을 보내게 되었다일 년의 방학을 아이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아니원래 아이 것 이었는데 아이에게 되돌려 준 것이라는 말이 더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아들이 저항을 통해 자기 용돈에 대한 권리를 부모로부터 쟁취한 것처럼나는 하고 싶은 게 없어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라며 고민하던 딸아이의 소심한 아우성은 시간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적극적으로 찾게 해준 단초가 된 셈이다.


자기 시간을 자기가 알아서 사용하는 것누구에게나 그 기회는 열려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긴 방학을 가질 수는 없다큰딸은 할지 말 지 결정하는 데만 일 년 반이 걸렸다그렇다고 처음부터 대단한 용기와 포부의지가 있었던 건 아니다잘은 모르겠는데(당연하다처음 해 보는 거니까), 아침마다 늦잠 잘 수 있다는 것에 일차적으로 낚이고(게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두 번째로는 남들과 달리 뭔가 특별해 보이는 것도 기분 괜찮을 것 같으니까 여타의 불안과 걱정을 맨 뒤로 보내기(컴퓨터 편집용어)’ 처리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결정적으로 부모가 한번 해보라고 부추기니 어느 정도 책임은 나눠질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수도 있다어쨌든 좋다하고 싶은 마음 51, 하기 싫은 마음이 49로 안식년을 선택했을지언정 일단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이런 큰 모험은 열여섯 평생에 처음이었을 것이다안식년은 아무나 못 누린다선택하는 사람만이 누린다.


그러나 달랑 한 달밖에 안 되는 방학도 뭘 할지 막막하고 무료한 날이 더 많게 마련인데곱하기 12라니딸의 붕괴된 일상을 예상하여 실제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만마음 한 구석에서는 바람직한 방학생활을 기대하기도 했다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아이는 매우 오랜 시간 자고조금 놀고아주 가끔 의미 있어 보이는 활동을 했다의미 있어 보이는 활동이란 학교에 다닐 때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엄두를 내지 못했던 취미생활과 약간 색다른 공부아빠와 함께한 여행을 말한다그러니 평상시 방학이 12배로 늘어난 것과 정말 똑같았다아일랜드처럼 진로체험 기회를 찾아주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거의 시도도 해보지 못했다엄마의 막연한 기대는 안식년 초기에 깨끗이 접었다내가 주경야독 하느라 바빠서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그 덕분에 딸은 오롯이 자신의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교과공부에서 해방된 아이는 긴 빈둥거림과 가끔의 특별한 경험에 자신을 던져두었다잠을 자든 드라마 삼매경에 빠지든하고 싶은 대로 자기 시간을 움직이는 사람은 일단 삶이 즐거울 수밖에 없다모든 인간에게 자유롭고자 하는 욕구는 얼마나 큰가그래서 얼굴도 밝아지고 예뻐졌다이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부대효과로서 아이에게는 가장 의미 있는 변화였다(꽃다운친구들 1기의 한 부모님도 지난 8개월간 아이의 가장 큰 변화는 단연코 예뻐진 것이라고 말한다아이가 가장 자기다워지는 시간이어서 그런 것 같다고).


저러다가 사람이 굼벵이가 되는 기이한 현상을 목격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최대치 빈둥거림을 지켜보면서(아이도 자신의 한없는 게으름을 경이롭게 생각하는 듯했다여러 번 마음이 끓어올라 억제할 수 없는 잔소리가 종종 튀어나왔다아무리 방학이 길다지만 자기가 신생아인 줄 아는지 일 년 내내 하루 10시간 수면은 기본이었다불어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스스로 알아보라고 하니 응대답만 하다가 결국 한 달쯤 지나서야 인터넷으로 아베세데를 익히기 시작샹송이라도 한 곡 마스터할 줄 알았는데 한 달쯤 뒤부터 불어를 공부하는 딸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다대개 이런 식이었다이보다 더 순수한 방학생활이 있을까 싶다.


그 와중에도 한 가지 고무적인 일이 있었는데매일 정오가 넘어야 겨우 일어나는 아이가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맡은 역할을 위해 일 년 내내 아침 7시면 집을 나섰다는 것이다그리고 좋아하는 연예인 팬 사인회에 가기 위해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결국 성취해내는 성실함을 보면서 이런 바람직함이 더 자주 목격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또 좋은 점은 가족끼리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만 가능한 진심 어린 대화를 자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주로 부모성토대회였지만 말이다아이가 자신의 마음속 복잡한 감정들을 알고 싶다고 해서 심리검사도 받고 좋은 상담 선생님을 만나 수차례 마음을 탐험하는 시간도 가졌다그렇게 대체로 멍 때리고 빈둥거리며 10개월 정도 지나니 그제야 공부 걱정을 아주 조금 하는 것 같았고고등학교 입학을 한 달 앞두고 수학 문제집 한 단원 정도를 미리 들여다보는 것으로 아이는 긴 방학을 마무리했다이후 3년간 동네 일반 여고에서 한 살 어린 동생들과 무난히 지내다 졸업했다가끔은 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언니 역할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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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길을 걷다가 때마침 발견하는 풍경

 

  그 후 몇 해 동안 우리 가정의 특별한 경험을 궁금해하는 분들에게 대단한 듯 대단하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이 생겼다그러다가 입시경쟁에 찌들어 앞만 향해 달려가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 느릿느릿 걷는 시간도 의미가 있음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어져서남편과 함께 숨쉬는방학 꽃다운친구들이라는 청소년 자유학년제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꽃다운 나이열여섯 살 이팔청춘 청소년들에게 빈둥거리는 시간을 돌려주자는 취지로 만든 모임이다. 2016년에는 열한 명이 일 년의 자발적 방학을 선택했다사 년 전 딸은 혼자 외롭게 보냈지만이제는 꽃다운친구들로 만난 청소년들끼리 함께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꽃다운친구들은 일주일에 두 번 만나서 자(기탐구)(사활동)여 (행유희)(계형성네 영역 활동을 통해 자신과 세상의 맛을 느끼고 뜻을 깨닫는 배움과 사귐의 시간을 갖는다이틀 동안 밥 지어먹기생 활문 나누기책 읽고 글쓰기캠핑여행사진음악미술연극사람 책 도서관장애인복지관 방문놀러가기 등 다채로운 시간을 보낸다함께이기에 가능하고 즐거운 활동들이다.


자기이해 활동의 하나였던 덕밍아웃(덕질+커밍아웃)’시간이 내게 특히 인상 깊었다. 11인 11색의 개성미 넘치는 덕후들이 자신의 세계를 선보였는데 신발 디자인아이돌보드게임페이퍼 아트재즈애니메이션 등 그 종류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덕질의 깊이와 열정도 대단해서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었다자신이 좋아하고 에너지를 쏟는 일이 뭔지 모르겠다던 한 친구는 긴 고민 끝에 자신이 사람 얼굴과 이름을 오래 기억한다는 것사람에 대해 남다른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4월에는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미수습자 허다윤 학생 어머님을 초청해 얘기를 나누고 홍대 앞에서 열린 단체 피케팅에 참여했으며그 만남을 기억하면서 열한 명이 함께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어 추모하는 시간도 가졌다이렇게 부지런히 이틀을 함께 보내고 나머지 5일은 최대한 빈둥거릴 자유를 누리기 위해 집에 서 각자 보낸다.


작년꽃다운친구들 설명회에 취재를 온 기자가 일 년의 방학이 꿈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느냐고 묻자 딸은 안식년이라는 대담한 선택 을 해보았기에 앞으로도 꿈을 찾아갈 때 주도적으로 조금은 대담하게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다소 애매모호한 대답을 했다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열두 달 동안 잘 쉬었지만 소위 진로앞으로 어떤 전공을 선택할지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선명한 그림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아이가 보낸 일 년의 방학은 시간 낭비였을까앞서 말했듯 나도 처음엔 아이가 입시전쟁 속에서 덜 고생하길 바라며 공부 목적이라도 찾아보라는 의미로 안식년을 제안했었다그러나 딸 입장에서는 질리도록 쉬어본 후 양심상 공부 좀 해야겠다는 가책 정도를 느꼈지뚜렷한 꿈을 찾고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까지 생긴 것 같지는 않았다다만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엄마아빠도 관찰하고느린 걸음으로 세상을 구경하면서 그 시간과 그곳을 충분히 살았던 것이다.


요즘 꿈이 없다고장래희망이 없다고 걱정하는 초등학생들을 자주 본다중고등학생은 장래희망이나 원하는 직업이 없는 것을 아예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분위기다해마다 3월초 학생 조사서에 부모가 희망하는 자녀의 직업을 써야 하는 것은 내게도 고역이다빨리 진로를 정하라고 재촉하는 이 세태가 바람직한 것 같지는 않다진로는 직업을 정하는 것이 아닐 테고 학교 현장에서도 꼭 그렇게만 접근하는 것은 아니겠지만,진로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체감하는 진로교육은 사실상 직업 찾기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어린이청소년 시절에 자기 적성을 찾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진로탐색 과정에서 직업 적성직업 흥미검사 등을 통해 단서를 얻기도 하지만 참고자료일 뿐 검사결과가 그 아이를 다 말해주지는 못한다.


느리게 걷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 분명 있다바삐 지나갈 때는 못 보는 나 자신과 세상의 다채로운 풍경이 그것이다그 안에서 자신의 흥미적성의 희미한 실마리를 조금씩 맛보는 것이 청소년기에 경험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그런 의미에서 딸의 대답은 참 정직하다긴 휴식을 선택한 자신의 용기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인생의 여정에서 뭔가 영향력을 발휘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는 말이다.


이 기간을 통해 비교적’ 좋아한다고 알아차린 분야로 대학 전공을 정했지만이 또한 진로의 일부분일 뿐 인생 전체를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진로는 적성을 발견하자마자 후딱 정해버려야 할 어떤 과녁이 아니라자신과 세상을 알아가며 끊임없이 적응하고 가꾸어가는 과정 그 자체이다지금 꽃다운친구들도 아홉 달째 느슨한 시간표로 천천히 걸으면서 미처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다양한 인생 선배들을 만나 넓은 세상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뿐이지만 이 시간 자체가 일 년 뒤서기로 작정한 아이들의 진로인 셈이다이들이 계획하지 않고 의도하지도 않은 소중한 풍경들을 감상하고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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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안식년에 쌓은 엄마 내공

 

  청소년기 아이들이 스스로 잘할 수 있다고알아서 하겠다고 선언할 때부모들의 본능적이고도 자연스런 반응은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내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와일 수 있지만나는 그 일 년 동안 의지적으로 반응을 다르게 해본 셈이다아이가 잘해낼 것을 굳건한 믿음으로 믿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을 지지해 주는 쪽으로 말이다.


어쩌면 잘 못할 것을 알고도 허락하는 것에 가까웠다자기 힘으로 자기 삶을 살아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맷집이 생길 수밖에 없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부모라는 울타리 안에 있을 때 실수와 실패를 경험해볼 수 있다면 긴 인생 살아가며 이보다 더 좋은 배움이 있을까시행착오 없는 매끈한 성공은 매력이 없다그래서 웬만한 간섭을 제거하자결국 제 힘으로 살아갈 아이들이다연습할 기회를 빼앗지 말자고 지금도 되뇐다.


어느새 경력 21년차지만솔직히 뭘 해도 안 해도 늘 불안한 이 부모 노릇을 빨리 졸업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그런데 부모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부모가 뭘 하든 안 하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고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다그러니 괜한 걱정과 불안은 모두 안드로메다로 보내야 하지 않을까갈수록 그게 참 아이러니다 .


더불어부모의 본능적 불안을 견디는 데에는 부모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가꾸는 것이 가장 탁월한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자신을 살뜰히 보살피다 보면 아이 삶에 시시콜콜 간섭할 한가함이 없어진다그러다 보니 나는 점점 아이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기회를 내어주는 괜찮은 부모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이 또한 아이러니다.


순수하게 아이의 시간을 자기 것으로 되돌려주고 싶은 부모아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게 연습의 기회를 주고 싶은 부모잃어 버린 웃음과 아이의 고유성을 되찾고 싶은 부모들이 혼자 고민하지 않고 꽃다운친구들과 함께하고 있다.


꽃다운친구들은 자녀와 부모가 함께하는 가족동행 프로그램이므로 한 달에 두 번 정도 부모 모임을 열어서 연애 시절을 소재로 수다 를 떨기도 하고아이들의 성격유형을 엿보며 부모로서 성찰의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몸을 부대끼며 놀기도 하고진학지도 강연도 들었다또 중년의 건강관리한국의 인권문제 등 부모들끼리 품앗이로 배움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사실 삶에 지친 중년의 부모님들이 모여서 무엇을 하는 것이 무리이지 않을까 처음엔 우려도 했는데 자녀의 안식년이라는 공통분모만으로도 든든한 동지애를 나누는 모임이 되어가고 있다무엇보다 자기 아이 또래들을 가까이서 관찰하며 대부대모의 심정을 가지게 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공동체라서 누릴 수 있는 풍성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이 꽃다운친구들을 선택한다는 것은 학교에서 또 다른 학교로의 탈출이 아니라 가족구성원으로의 귀환이다건강한 독립을 위한 토대로서 안정감 있는 가족 관계친밀한 관계를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다그러나 일 년의 방학을 또 하나의 스펙 쌓기 아이템으로,다음 단계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충전 기간으로혹은 확실하게 진로를 찾는 시간만으로 여기는 부모님들은 분명히 실망할 것이다부모가 흑심을 품으면 그 방학은 이미 방학이 아니다자기 의지 없이 부모 손에 끌려온 아이들은 긴 방학을 부모의 감시 가운데 괴롭게 보낼 것이 분명하다꽃다운친구들은 이제 겨우 첫돌도 지나지 않은 걸음마 시기를 보내고 있다다만 작년에는 우리 딸아이의 희귀하고 희미한 사례에 기댄 담대한 예언이 전부였다면이제 열한 가정의 생생한 증언이 마련된 셈이다아직 한 줌이지만 너무도 귀한 한 줌이다이들의 용기와 결단이 쌓이다 보면 오늘날 아이들에게 유해하기 짝이 없는 교육환경에 힘찬 똥침을 날리게 될 테니 말이다.


무슨 방학을 일 년씩이나길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백 세 인생 중 겨우 100분의 1일 뿐이다



무더위에 안녕하신지요? 

이번 8월 <복음과상황>(기독교 월간지)에 꽃다운친구들 탄생의 배경이 된 우리가정 자녀양육 스토리가 실렸습니다. 글쓰기는 제게 늘 커다란 부담이고 과제인데 꽃친 덕분에 글과 이따금씩은 친해져야만 하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조금 길지만 읽어주시고 피드백도 해주신다면 무한감사하겠습니다. 

가을이 그립고 그립습니다.  곧 오겠지요! 

"1년의 방학 동안 딸은 마음껏 자고 쉬면서 말 그대로 보신(保身)을 했고, 생애 최고의 피부 상태를 경험했고, 한편으론 너무 잘 쉬어서 ‘만족스럽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얄궂은 마음이 어디에서 오는지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대단한 용기처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100세 인생’ 중 겨우 100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입니다. " 

기사링크 --> http://bit.ly/2bmeHw7



한낮 36도 폭염을 뚫고, 세이브더칠드런과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가 주최한 <한국 아동의 삶의 질 3차년도 연구발표회>에 다녀왔습니다.  '왜 중학생이 되면 행복도가 낮아질까?'라는 주제에 솔깃한 예지쌤이 정보를 알려주셔서 함께 갔어요. 두명의 꽃치너들도요. 이들은 생전 처음 프레스센터 구경을 한거라지요. (꽃치너들의 활동영역은 무궁무진합니다!) 

1부  한국 아동의 삶의 질은 건강,인성,주거환경,교육,안전,물질적상황,아동의 관계,주관적 행복감 등 8개 영역으로 조사했고 연구결과, 대도시 지역 아동의 삶의 질이 중소도시, 농어촌에 비해서 높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지방자치단체 재정자립도 및 복지예산 비중과 아동 삶의 질 종합지수 간에 높은 정적 상관관계가 있다고도 합니다. 아동학대 사례판정 건수와 아동 삶의 질은 당연히 부적 상관관계가 있고요. 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주목할 점은 만족도 상위집단과 하위집단의 차이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하네요. 한국사회 양극화가 아동의 삶의 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미죠. 안타깝습니다.  

어렵고 지루한 연구발표내용에 꽃치너들이 귓속말로 '무슨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하길래 눈을 찡긋하며 화답해주고 함께 하품하다가, 토론자로 나온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진미정 교수님이 "아동들이 스스로의 삶에서 주체성을 발휘할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 삶의 질 향상에서 중요한 요인이 된다. 적성, 진로, 시간 사용 등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시도해볼 수 있는 자유와 선택권이 보장되는 것이 행복감을 높이는데 필수적이다."라고 언급하는 순간, 눈이 반짝 뜨였습니다. 밑줄 좌악~  '자기 시간' 없이 수동적으로 어른이 정해놓은 방식과 속도로 사는 아이들의 행복도는 낮을 수 밖에 없겠지요


2부 <중학생의 행복감>을 연구한 가천대 사회복지학 안재진교수님의 발표도 이어졌습니다. 초등학생, 중학생 스스로가 말하는 행복을 연구한 것인데, 이들은 1.학업에 대한 부담 증가 2. 여가시간의 절대부족  3. 가족과 보내는 시간 감소 및 관계의 질 하락 4. 친구관계  등이 행복을 저해한다고  말했답니다. 조금 디테일한 설명 중, 2번의 여가시간에 대한 아이들의 정의가 의미있었어요. 초등학생들은 '놀 때'가 행복한데, 중학생들은 '쉴 때, 잘 때 등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라고 한답니다.  짠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몇년 사이에 아이들이 무언가에 지쳐간다는 말이 아닐까요. 

토론자로 나온 두 명의 중학생 이야기가 하도 생생하고도 의미 있어서 발표회 중의 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아이는 중학생이 되면서 행복으로부터 멀어진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려줍니다. 1. 어린이도 아닌데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굉장히 애매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고, 그래서 불안과 혼란스러움이 있다. 2. 중학생이 된 후 행복을 좌우하는 원인은 단연 학업 부담이다.  3. 중학생부터는 생기부(생활기록부)인생이라서 절대적으로 자유시간이 부족하다.  4. 친구문제도 학업스트레스만큼 심각한 요인이다. 5. 미래의 행복과 불행이 현재의 나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면 두렵다. 행복에서 멀어지게 하는 결정적 이유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다.  이 이유들을 듣고서 '아, 너희가 그렇구나'하며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끄덕했습니다.  또 다른 중학생도 '중학생이 되고 보니 어른 대열에 낀 모양으로 인생을 걱정하고 장래를 걱정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앳되고 귀여워보이는 아이가 인생 걱정 운운해서 좌중을 웃게 했지요. 그 역시 공부에 대한 압박감이 고민이랍니다. 

1부 연구에서는 아동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중앙정부의 적극적 노력, 사회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변화, 특단의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고, 2부 연구자는 학업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다양한 진로를 보장하는 사회적 환경 조성이 필요하며, 아동의 여가 및 자유시간을 보장해야 하며, 가족과 보내는 시간의 양적 증가와 가족관계의 질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합니다. 토론회를 마무리하면서, 한두가지 해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고 사회전반적인 변화가 이루어져야한다는 분위기로 흘러갔습니다. 네네 틀린 말은 아니죠. 그런데, 2시간여 아동의 행복을 주제로 열띤 발표와 토론을 통해 기껏 누구나 예상가능한 이런 결론을 내리다니 참 무력해지고, 공허하다는 느낌지울 수가 없었어요. 자유가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행복하지 않다고 호소하는 아이들을 위해 사회전체가 변하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가 당장 할 일은 정말 없을까요? 바로 그때! 토론자였던 사교육걱정없는 세상 안상진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님께서 중학생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뻔히 보이는데도 사회전반적 변화 운운하며 비켜간다면 아이들을 현재의 불행 속에서 그대로 살라고 내버려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돌직구를 날려주셔서 속이 뻥~ 뚫렸습니다. 밑도 끝도 없어 보이지만 손 놓고 수수방관할 수는 없지요. 틀린 것은 바로 잡고, 아이들에게 유해한 것은 최선을 다해 제거해주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이겠지요. 이같은 운동에 너도나도 손끝이라도 담가야 우리 아이들이 제 숨 쉬며 사는 세상이 가까와지지 않을까요. 

안상진 선생님은 토론에서 '이번 연구에서 학업과 시간사용 영역이 중학생의 행복에 가장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언급한 영역이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시간사용과 관련된 부정적 변화로 학업으로 인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시간사용의 부정적 변화인 '해야할 일이 생기고' '통제되고' '강요되는' 대다수의 경우가 공부와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즉, 학업에 대한 부담이 중학생의 행복도를 가장 많이 낮춘 요인이라고 정리해도 과언이 아니다'로 시작해서  '중학생 학업부담 원인으로  1. 고교입학전형의 문제(수직적 다양성으로 고교가 서열화됨. 영재학교, 특목교,자율형 고등학교 등 소위 '좋은'학교 학생 수가 전체의 4.9%로 서울 상위 11개 대학-전체의 5.5%-을 채울 정도로 많은 상황에서 중학생들은 고입전형에 실패하면 이미 대학입시에서도 실패하는 것이라는 압박감을 심하게 느끼고 있다. 일반고에 갈  중학생들도 열패감을 느낀다.)  2. 석차백분율(서열화된 중학교 성적 산출방식은 학업부담을 가중시키며 옆 친구를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을 심어준다.)'을 제시했습니다. 이 정책과 제도의 변화가 중학생의 행복 증진에 필수적이라는 것이죠.  이렇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해주는 단체가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또 한 분의 토론자께서도 어른들의 주5일 근무제, 하루 8시간 근무 법적 보장 처럼  학생들의 '하루 학습량 제한법' '주말 휴식권 보장법'이 보장되어야한다고 주장하셨어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비롯한 여러단체가 현재 힘을 기울이고 있는 '학원휴일휴무제' 제정운동과도 같은 맥락입니다.  


얼마전에 접했던 한 조사결과가 기억납니다. 요즘 기성세대에게 '놀이'는 '즐거움'을 연상하게 하지만, 아이들에게 놀이란 주로 '자유'를 의미한다고 해요. 노는 시간은 부모의 감시를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는 시간이라고 여기나봅니다. 아마도 그때가 유일한 자유시간이겠고요. "생기부 인생을 사는 우리들은 절대적으로 자유시간이 부족합니다. 항상 무엇인가 해야할 일이 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일 덜 급하고 점수화 되지 않을 일들이 가장 먼저 저희들의 인생에서 지워집니다. 어쩌면 행복은 지워진 일들 속에 있었을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중학생이 토론 중 담담하게 들려준 이 말이 가슴을 후비고 들어와 깊이 꽂혔습니다. <꽃다운친구들>을 가장 짧게 설명하면 아이들의 시간을 아이들에게 되돌려주는 운동입니다. 일단 시간을 돌려주면 아이들이 움직입니다. 그렇게 믿습니다. 발동이 걸리는 시간은 각각 다르지만요. 덜 급하고 점수화 되지 않을 일들, 그래서 손쉽게 지워졌던 그 시간들을 다시 불러내어 채워가다보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세워갈지 그림이 그려질것입니다. 그렇게 믿습니다. 그럼 행복하냐구요? 음...적어도 불행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유시간없이 쫓기며 사는 경우보다는 행복할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입니다.  


"얘들아, 근데 점수로 쳐주지도 않는 이런 곳에 와서 너희는 지금 뭐 하는 거니?" ^.^ 

뭔지도 모르고 쫄래쫄래 따라와 지겹기도 하고 조금 재미도 있던 발표회를 끝까지 견딘 두명의 이쁜 꽃치너들과 저녁을 먹었습니다. 방학도 없이 생기부를 걱정하면서 원하지도 않는 특별활동을 하고 있거나, 선행학습이니 복습학원이니 쫓아다니고 있을 또래 친구들의 삶과 달라도 너무 다른 삶이죠.  자발적 방학을 선택함으로써 사회를 향한 소리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는 이 적은 무리가 사회전반의 변화를 부추기고 있는데... 보이시나요? 

                                  


지난 해 11월에 강의했던 사교육탈출: 길을찾다 길이된사람들 2강 리뷰가 시사인에 실렸어요. http://bit.ly/2k9XISH

기자님이 찰떡같이 요약정리해주셨어요. 이 기사 덕분에 <꽃다운 친구들>이 또 많은 이들에게 소개된 것 같아요.

한때 시사인에서 많이 본 기사 2위까지 올라가는 걸 보고 깜놀!


"학교 쉬랬더니 1년 동안 잠만 자던데요" 라는 제목이 주의를 끌지 않았나 추정해봅니다. 

(은율아, 지못미~!!! 시사인에서 붙여준 제목야~ 엄마가 한 게 아니야~)


거슬러올라가보니 꽃다운친구들의 처음 씨앗은 2009년 2기 등대지기학교였습니다. 

어느 강의에선가 유럽의 안식학년에 대해서 듣고서 바로 가슴이 벌렁거렸거든요. 

저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회원으로서 등대지기학교를 수강하면서 좋은 배움의 시간을 가졌을뿐만 아니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과 만나 친구가 되는 기쁨도 누렸습니다. 

강좌 제목처럼 길을 더듬더듬 찾아가다가 좋은 단체와 동지들을 만나 어떤 부모로 살고 있는지를 강의 시간에 나누었습니다.

사실, 길을 찾다 길이 '된' 사람이라는 제목에 저를 가져다 붙이는 것은 매우 황송한 일이구요.

길을 찾다가 '여기가 길인가봉가?' 하고 아직도 여전히 가고 있을 뿐입니다. 


아, 저는 기사에 '심리상담가'라고 소개되었지만, 딱 적절하지는 않고요. 

제가 가진 자격은 청소년상담사, 사회복지사이고, 하는 일은 부모교육과 가족상담입니다. 

소개할때 다소 어정쩡한 면이 있었는데, 이렇게 자격과 하는 일을 구분하니 소개하기 좋네요. 

앞으로는 한마디로 소개할 명칭이 생겨서 한결 홀가분합니다.  꽃다운 친구들 대표요 ! ^^


IVF학사회 소식지인 <소리>에 실린 제 글입니다.

은율이와 함께 한 긴 방학의 알파와 오메가를 쓰느라 조금 길어졌습니다.

http://ivfgcf.tistory.com/314 (링크 오류로 전체 글 퍼옵니다.)


열여섯 살, 꽃다운 친구들에게 주는 선물




엄마: 은율아, 너 중3 졸업한 후에 1년간 transition year1라는 거 해볼래?

  딸: 그게 뭔데?

엄마: 유럽 몇몇 나라에서는 고교진학 전에 진로탐색을 위해서 특별한 시간을 갖는 제도가 있대. 자신이 뭘 좋아하고 뭘 잘 하는지 알아가는 시간이 되겠지. 솔깃하지 않니?

  딸: 그럼 학교 안 다니고?

엄마: 응. 아일랜드나 덴마크, 영국 등에는 그걸 위한 학교나 프로그램이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으니까 개인적으 로 그냥 쉬면서 해야겠지?

  딸: 1년 뒤에는 한 살 어린 애들이랑 고등학교 다니고?

엄마: 그렇지. 1년 지내보고 혹시 고등학교 진학 외에 대안학교나 검정고시 등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어. 

  딸: 에이~ 싫어. 학교 안 다니는 건 좋은데 결국 한 학년 꿇는 거잖아. 그건 싫어.

엄마: 그래? 싫음 말고... 뭐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거야.


2009년 봄, 중학교에 입학한 딸과 나눈 대화입니다. 저는 그 때 ‘사교육걱정없는세상2’이 개설한 ‘등대지기학교’ 강의를 듣고 있던 수강생이었습니다. 큰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그간 헐렁하게 해온 엄마노릇을 더 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부담을 가진 시점이었고요. 그전까지는 애써 외면해오던 동네의 목소리 큰 아줌마들의 사교육정보가 귀에 꽂히면서 팔랑귀가 되어 우왕좌왕할 때였는데 등대지기학교가 이 학부모의 정신줄을 잡아주었습니다. 어떤 분의 강의였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가장 매력적이었던 것이 바로 ‘transition year’, ‘gap year’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바로 딸에게, 남편에게 전해준 것이지요. 딸은 부정적이었지만, 남편은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열린 귀로 들어주었습니다.


중학교 첫 시험인 중간고사를 준비하던 아이의 어깨너머로 요즘 교과서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어떻게 공부하는지 유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세상에나, 책은 훨씬 세련되어졌지만 30년 전 제가 공부하던 방식과 다를 바가 없이 대부분의 과목을 달달 외워야 하더군요. 즐거운 배움과 깨달음은 없고 오로지 입시를 위해 공부 기계가 되어 문제집을 풀며 중고등학교 6년을 보낼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목표나 동기가 없이 그저 좋은 성적을 위해 꽃다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그러나 제도교육을 벗어나 홈스쿨링이나 대안학교 등으로 아이를 교육하는 것은, 저의 귀차니즘이나 기타 여건 등으로 보아 가능성 10%도 되지 않는 옵션이었기에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망가지지 않게 잘 버티는 쪽으로 방향을 가다듬어야겠다, 정도만 마음먹었지요. 그러던 차에 매우 적절한 강의를 접한 셈입니다. 고교진학 전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알아보고 공부의 이유에 대해 조금이라도 자신만의 답을 가질 수 있다면, 고교 3년을 보낼 넉넉한 동력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jarmoluk(pixabay.com)



그 다음해, 2학년이 된 딸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 사이 살짝 긍정적인 쪽으로 기울어진 아이에게 3학년 여름방학까지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자 제안하고, 우리 가족은 이후 1년 동안 이따금씩 그 시간이 주어지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부모인 우리는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지 소위 ‘견적’을 내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실 저는 아일랜드처럼 3가지 정도의 관심직업을 직접 체험해보는 것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런 시간이 진로탐색과 학업 동기부여에 매우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제 딸의 경우, 음악에 관심이 있어 보이니 뮤지컬이나 방송음악 등 관련된 곳에서 비록 허드렛일을 하더라도 곁에서 기웃거릴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싶었던 거지요. 결과적으로 딸아이는 부모의 격려에 힘입어 안식년을 작정하고 고등학교 배정신청을 보류했고, 1년간 무소속 청소년으로 자유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처음에 제안했던 직업체험 기회는 현실적 제약이 많아서 쉽지 않았고, 결국 그 시절 아이는 강아지 기르기, 드라마 시청하기, 음악/미술학원 다니기(각각 겨우 두 달씩), 약간의 책읽기, 사진 찍기, 아빠와 함께 여행하기, 엄마와 동네도서관 가기, 집안 살림 돕기 등이 일상이었답니다. 저는 그때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면서 야간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주경야독 학생이었기에 백수인 딸이 참으로 쓸모가 있었습니다.


모든 삶에서 ‘빨리 빨리’를 외치며, 학습조차 몇 년씩 선행을 해야만 살아남을까 말까 하는 이 무시무시한 정글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긴 했습니다. 하지만 일관되게 빈둥거리는(듯 보이는) 아이를 한두 달도 아니고 열 달씩 지켜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예상하실지 모르겠지만, 아이의 일과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한 것은 단연코 ‘잠’이었거든요. 그러니 딸이나 우리 부부에게 종종 불안이 밀려드는 겁니다. 규모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다, 괜히 시작했나, 이러다 고등학교 가서 뒤쳐지는 거 아닌가 등등. 용감하게 시작했으니 그래도 끝까지 가보자고 마음을 다잡으며 흘러가는 대로 더 두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자기 나름대로 고독한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돌아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는 듯 보였는데, 이는 고3이 된 현재까지 마음의 불을 지피는 땔감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딸의 안식년을 곁에서 지켜본 엄마로서 제가 배운 것은 ‘불안을 다스리는 법’입니다. 비법이 있는지 물으신다면 변변히 드릴 말씀은 없고요. 제 짧은 경험으로는 좌충우돌하는 아이 옆에 ‘그저 버티고 있기’밖에 다른 방법은 없지 않을까 합니다. 불안을 온몸으로 맞이하고 버티다 보니 그럭저럭 일 년이 지났고, 그 시간은 아이에게 앞으로 또 본의 아니게 다가올지도 모를 불안한 시간을 엄마로서 바라보며 견딜 내공을 길러주지 않았나 조심스레 평가해봅니다. 이 시대 부모들은 자녀의 미래를 위해 많이 고민하고 물심양면으로 헌신하고 희생합니다. 딸에게 남다른 1년을 제안하고 허락한 저 또한 어떤 면에선 자녀교육에 뭔가 특별한 열심 또는 흑심을 품은 사람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습니다. 온갖 사교육에 올인한 부모들이나, 일 년간 푹 쉬는 시간을 제공한 저희 부부나 기저에는 ‘자녀가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똑같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단, 열심이 있는 부모일수록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방향이 잘 잡혀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그 방향은 아이가 스스로 살아갈 힘을 갖추게 하는 것이고, 내 품에 있을 때 이런 자유롭고 느긋한 쉼을 잠시 누리며 ‘자가발전’하도록 내어버려두는 것이 부모역할이라고 생각했기에 딸아이에게 쉼을 선물할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청소년 부모로서의 발달과업을 성취하느라 부모로서 힘 빼는 데 힘을 썼습니다. 무심코 써놓고 보니 참 역설적입니다만, 좋은 부모 되기 위해서 우리 부모들은 기본으로 힘을 잔뜩 주고 있기 때문에 힘을 빼려면 무척 힘이 듭니다. 자녀양육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잊으면 더욱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요. 많이 뺐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뺄 힘이 남아있음을 저는 요즘도 종종 경험합니다. 



ⓒUnsplash(pixbay.com)



제 딸아이의 특별한 경험을 듣고 관심을 갖게 된 지인들이 이것저것 궁금해 하시더군요. 혼자 하자면 엄두를 내기 어렵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청소년들이 함께 모이면 덜 막연하고 또 풍성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난봄부터 남편과 함께 관련 프로그램을 준비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서울시교육청에서 ‘오디세이’라는 고교자유학년제 프로그램3에 시동을 걸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도권에서도 무모한 입시경쟁 시스템에서 고통 받는 청소년들과 부모들의 소망을 감지하고 장을 열어준 것입니다. 또한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도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책에서 덴마크의 인생설계학교(After school)4를 소개하며 인생의 전환기마다 인생을 설계하는 시간을 갖도록 돕는 인생학교를 세울 계획이라고 합니다. 한번 학교에 입학하면 대학 입학까지 무조건 앞으로 달려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옆을 봐도 괜찮다고, 옆을 보는 게 필요하다는 시각이 많은 분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 것 같습니다. 이 또한 바람직한 분위기입니다.  


우리 부부가 준비하는 ‘꽃다운 친구들’(이하 ‘꽃친’)은 다음 세대를 위해 창의적인 휴식을 제공하는 과정입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교 진학 전 1년 동안, 고교배정을 미루고 학업을 쉬면서 부모와 함께 진로탐색과 인생설계는 물론 자기탐구 및 시험걱정 없는 공부, 봉사와 여행, 친구사귀기와 놀이 등을 통해 열여섯 살 이팔청춘 꽃다운 나이의 아이들에게 자기 호흡으로 숨 쉬게 하는 1년짜리 긴 방학 프로그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12~20명, 한 클래스 정도의 중졸(?) 남녀 아이들과 1월부터 12월까지 정기적으로 주 1~2회 정도 만나면서 자발적인 과제 중심으로 부모와 함께 자신의 미래를 구상하는 시간을 제공하려고 합니다. 어떤 분 말처럼 부모를 위해 “공부해 드리는” 아이들이 아니라, 자기만의 이유로 공부하는 꽃다운 친구들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기간에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남편 말을 빌리자면, 이런 모색들이 입시서열주의라는 제국의 질서에 의미 있는 균열을 내는 영악한 실천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비 ‘꽃친’ 부모님들은 자녀 한명을 위한 시도이지만 장차 이 나라의 미친 교육열을 식혀주는 흐름에 한몫을 하게 되는 셈이라고나 할까요. ‘꽃친’은 덴마크의 ‘애프터스콜레’처럼 일 년간 빡쎄게 진로를 개척하는 기숙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서울시교육청이 앞장서고 있는 ‘자유학기제’와도 다르고, 1년간 대안교육 프로그램을 학과목과 동시에 제공하는 ‘오디세이학교’와도 다릅니다. 중학교를 졸업하는 겨울방학에 3개월 정도 합숙하며 집중해서 인생을 고민하는 ‘인생학교’와도 다릅니다. 1년을 통째로 쉬는 개념입니다. 뒤서가면서 인생의 호흡을 고르려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앞으로 꽃친 블로그(kochin.tistory.com)에 채워갈 예정입니다.



ⓒstrecosa(pixabay.com)




은율이 안식년 뒷이야기

  

엄마가 품은 최초의 흑심이었던 아이의 진로체험은 애초에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1년간 내세울 만한 특별한 성취도 없어 보여 딸의 안식년에 대해 내심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물론 그런 걸 의도한 것도 아니면서 은근히 기대하던 얄궂은 엄마 마음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공립고교 진학 후 1년을 보낸 어느 날, 부녀간 심야토크에서 한 딸의 이야기가 제 무릎을 치게 하더군요. “우리 반 동생들이나 한 학년 위 내 친구들 모두 너무 개념 없이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학교생활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러다가 입시 앞두고, 대학에 가서, 아니면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하다가 멘붕되고 인생고민하면서 멍 때리는 시간이 있을 거 같아. 근데 나는 작년에 미리 멍 때리는 시간 넉넉히 가져서 참 다행이야.” 아이는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고 쉬는 동안 실컷 멍 때리며 실패와 한계를 맛보고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해볼 수 있었고 부모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여유를 누릴 수 있었고요. 느릿느릿한 걸음이었기에 하나님 사랑을 이전보다 진하게 맛보았고 이웃과 세상을 돌아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이는 그렇게 성장했다고 믿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진짜 성장인 그런 성장 말이지요. 그래서 앞길이 창창하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는 건 아닙니다. 그저 앞으로 다가올 실패를 견딜힘을 장착한 것 같아서 안심이 된다는 말이지요. 




이수진

20년째 엄마노릇하며 고3 딸과 중2 아들,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출산 후 10년간 경력단절여성으로 지내다가  나에게 맞는 일을 슬금슬금 찾아가는 중. 건강한 가정을 세우는데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부모대상 강의와 가족상담을 조금씩 하는 프리랜서인데, 앞으로는 '꽃다운 친구들' 대표라는 타이틀로도 불릴 예정이라 살짝 심장이 쫄깃한 상태로 '꽃친' 자원봉사자인 남편과 함께 준비하고 있다. 


















VOL.221│2015.08+09

교육, 새로운 바람




 


  1. 영국(Gap Year)이나 아일랜드(Transition Year)에서는 잠시 학교교육을 중단하고 봉사, 여행, 진로탐색, 인턴, 창업 등의 활동을 경험하여 향후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창조의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Gap Year) 등의 일부 대학에서는 우수 학생들이 중도에 대학교육을 포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입학 전후에 자신의 능력, 전공, 향후 진로나 직업을 탐색할 수 있도록 일정한 휴식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 출처: 글로벌 리포트 아일랜드 전환학년(Transition Year) 프로그램의 성과와 시사점, 윤형한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 [본문으로]
  2.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비교육적 입시 사교육 부담의 근본 원인을 제거함으로 행복한 교육을 만들고자, 국민들 스스로가 전개하는 자발적 대중 운동이다. - 출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식 홈페이지 [본문으로]
  3. 오디세이 학교는 고1 학생들에게 획일적인 교과 중심의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삶을 돌아보며 진로를 탐색할 시간과 여유를 주고 창의적, 자율적인 대안교육과정을 통해 학습 의욕과 학업능력을 갖춘 학생으로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 미래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고 변화를 주도하는 창의적인 진로 개척 역량과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자율적 시민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체험 중심의 교육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본문으로]
  4. 덴마크에서는 약 40퍼센트의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Afterschool(인생설계학교)에서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지 설계한다. 대부분 기숙학교 형태의 학교를 선택한다. 종합교육을 하는 곳도 있고 체육, 음악 등 특별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곳도 있다. - 출처 :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오연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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