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란 어떤 사람인가? 나는 학부모로서 어떻게 살아왔나? 꽃다운친구들이 이 시대에 왜 필요한가? 이 시대에 학부모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수많은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고 남편과 함께 밤마다 토론하고서 나온 결과물이 아래 영상에 담겨있습니다. 

학부모 주체성이라는 주제로 경기도교육연구원으로부터 발제를 의뢰받고 몇 날 몇 일 씨름한 덕분에 꽃친 운동의 의미를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낼 표현을 

찾아낸 것 같습니다. 조만간 글로 잘 다듬어 올려보렵니다. 우선 영상으로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멈출 수 있는 용기

2016.10.27 12:33

나라전체가 뒤숭숭한 시절이지만, 오랜만에 수다 한 편 올립니다. 

격월간지 민들레 107호 <멈출 수 있는 용기>에 꽃다운친구들 이야기가 소개되었거든요.  

또 한번의 클릭이 귀찮으신 분들을 위한 배려로 전문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링크도 있구요. http://bit.ly/2eHLRXH  




[꽃다운 친구들방학이 일 년이라니!]

 

이수진 

‘꽃다운친구들’ 대표. 사회복지와 가족치료를 공부했다. 건강한 가족공동체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어 스스로 가족 컨설턴트라

이름붙이고 학교, 도서관, 복지관 등에서 강의와 상담을 하고 있다.

kochin@brightfund.org



이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

 

  “용돈 아껴 써라”, “어디 학원이 좋다던데 거길 다녀라”, “쟤랑은 놀지 마라”, “지금부터 딱 한 시간만 놀아라.” 자녀를 겨냥한 부모의 명령충고훈화를 다 모아본다면 가히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인생 지침서(라고 쓰고 잔소리 종합선물세트라고 읽는다)’가 될 것이다학습은 물론이고 경제사회문화종교까지 다루지 않는 분야가 없는 것 같다이게 다 아이 잘되라고 하는 거다소중한 내 아이니까 일거수일투족 관리해주는 거다이러는 엄마도 피곤하다자기 일 희생하고 하는 거다옆집 아이에겐 그런 참견 안 한다는 말도 덧붙여가며 말이다그런데 이런 훌륭한 지침서를 가진 부모들도아이가 서너 살쯤 돼서 싫어!”라는 말을 달고 살거나 모든 동사 앞에 을 붙여 안 먹어” “안 자” “안 사랑해라고 말할 때의 당혹스러움을 기억할 것이다딱 청개구리 같던 시절그땐 제아무리 저항을 해봤자 금세 힘센 부모의 무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기에 그 모습이 오히려 귀여웠다그러나 소위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아이가 보이는 저항은 요 녀석 봐라당돌하군’ 정도를 넘어 부모로서 위기감마저 느끼게 한다.


며칠 전 우리 집에서도 모자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아들이 할아버지할머니친지들로부터 받은 특별용돈을 모아둔 통장에서 마음대로 돈을 꺼내 쓰지 못하는 것에 항의하면서 내 돈인데 왜 내 맘대로 못 해왜 엄마는 나를 과소평가해나도 알아서 잘할 수 있거든?” 이라고 했다전에도 아들이 이런 식으로 몇 차례 항거한 적이 있지만 매번 이 현명하신 엄마의 지침에 굴할 수밖에 없었는데이번엔 아들의 말에 무게감을 느낀 엄마가 자존심상 한두 번쯤 우기다가 결국엔 아들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게결국 네 돈인데미래를 위해 모아두는 편이 좋을 거라는 엄마의 판단을 믿고 따르라 했네언젠가는 네가 알아서 하는 거라고 마음먹긴 했지만 정작 그 언제가 언제인지는 나 도 참 막연하구나.’ 속으론 이런 생각을 하며.


이렇듯 자녀를 믿지 못함에서 비롯된 통제는 믿어주기로 작정하지 않으면 모드를 전환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그래도 아이들의 시기별 저항적 몸부림 덕분에 부모도 수시로 각성하고 나이가 들어도 계속 삶의 태도를 전환하게 된다. 21년째 엄마 노릇을 하면서 나름 전환하는 법을 배우며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 5년 터울의 둘째 아이는 쉽게 키울 것 같은데그렇지만도 않다마음의 부대낌은 시시때때로 새롭기만 하다이 일이 있고 나서 가만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학기 중에는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므로 자유로운 시간은 두어 시간을 넘기기가 어렵다주말과 방학에는 보충학습선행 학습각종 영양가 있(다고 믿고 싶은)는 체험 등으로 꽉 짜인 스케줄에 자유시간을 빼앗긴다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고수험생만큼 비장한 각오로 만들어진 일정표를 따라 살아야 하는 아이들을 목격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그러고 보면 물질만이 아니라 시간도 아이들의 것이 아니다.

 


참을 만한 멍 때리기의 비밀

 

  2012년 2월에 중학교를 졸업한 큰아이는 고등학교 배정을 보류하고 일 년 동안 긴 자체 방학을 가졌다당시에는 이름도 생소했던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학교 공부에서 잠시 떠나 진로탐색을 위해 일 년 동안 관심있는 일을 체험해보는 프로그램아이가 왜 공부하는지 모른 채 고교 3년을 고생스럽게 보내게 하긴 싫었던 엄마 귀에 매우 솔깃한 정보였다)를 개인 차원으로 적용해 볼 야무진 속셈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공부하는 목적과 의미가 생기리라 기대했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그런 시간을 갖기는 어렵다고 생각했기에충분히 여유 있는 시간을 누리면서 그걸 찾아보지 않겠냐고 던졌고이 제안을 받아들인 딸은 학교에 가지 않고 홀로 긴 방학을 보내게 되었다일 년의 방학을 아이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아니원래 아이 것 이었는데 아이에게 되돌려 준 것이라는 말이 더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아들이 저항을 통해 자기 용돈에 대한 권리를 부모로부터 쟁취한 것처럼나는 하고 싶은 게 없어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라며 고민하던 딸아이의 소심한 아우성은 시간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적극적으로 찾게 해준 단초가 된 셈이다.


자기 시간을 자기가 알아서 사용하는 것누구에게나 그 기회는 열려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긴 방학을 가질 수는 없다큰딸은 할지 말 지 결정하는 데만 일 년 반이 걸렸다그렇다고 처음부터 대단한 용기와 포부의지가 있었던 건 아니다잘은 모르겠는데(당연하다처음 해 보는 거니까), 아침마다 늦잠 잘 수 있다는 것에 일차적으로 낚이고(게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두 번째로는 남들과 달리 뭔가 특별해 보이는 것도 기분 괜찮을 것 같으니까 여타의 불안과 걱정을 맨 뒤로 보내기(컴퓨터 편집용어)’ 처리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결정적으로 부모가 한번 해보라고 부추기니 어느 정도 책임은 나눠질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수도 있다어쨌든 좋다하고 싶은 마음 51, 하기 싫은 마음이 49로 안식년을 선택했을지언정 일단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이런 큰 모험은 열여섯 평생에 처음이었을 것이다안식년은 아무나 못 누린다선택하는 사람만이 누린다.


그러나 달랑 한 달밖에 안 되는 방학도 뭘 할지 막막하고 무료한 날이 더 많게 마련인데곱하기 12라니딸의 붕괴된 일상을 예상하여 실제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만마음 한 구석에서는 바람직한 방학생활을 기대하기도 했다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아이는 매우 오랜 시간 자고조금 놀고아주 가끔 의미 있어 보이는 활동을 했다의미 있어 보이는 활동이란 학교에 다닐 때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엄두를 내지 못했던 취미생활과 약간 색다른 공부아빠와 함께한 여행을 말한다그러니 평상시 방학이 12배로 늘어난 것과 정말 똑같았다아일랜드처럼 진로체험 기회를 찾아주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거의 시도도 해보지 못했다엄마의 막연한 기대는 안식년 초기에 깨끗이 접었다내가 주경야독 하느라 바빠서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그 덕분에 딸은 오롯이 자신의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교과공부에서 해방된 아이는 긴 빈둥거림과 가끔의 특별한 경험에 자신을 던져두었다잠을 자든 드라마 삼매경에 빠지든하고 싶은 대로 자기 시간을 움직이는 사람은 일단 삶이 즐거울 수밖에 없다모든 인간에게 자유롭고자 하는 욕구는 얼마나 큰가그래서 얼굴도 밝아지고 예뻐졌다이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부대효과로서 아이에게는 가장 의미 있는 변화였다(꽃다운친구들 1기의 한 부모님도 지난 8개월간 아이의 가장 큰 변화는 단연코 예뻐진 것이라고 말한다아이가 가장 자기다워지는 시간이어서 그런 것 같다고).


저러다가 사람이 굼벵이가 되는 기이한 현상을 목격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최대치 빈둥거림을 지켜보면서(아이도 자신의 한없는 게으름을 경이롭게 생각하는 듯했다여러 번 마음이 끓어올라 억제할 수 없는 잔소리가 종종 튀어나왔다아무리 방학이 길다지만 자기가 신생아인 줄 아는지 일 년 내내 하루 10시간 수면은 기본이었다불어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 스스로 알아보라고 하니 응대답만 하다가 결국 한 달쯤 지나서야 인터넷으로 아베세데를 익히기 시작샹송이라도 한 곡 마스터할 줄 알았는데 한 달쯤 뒤부터 불어를 공부하는 딸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다대개 이런 식이었다이보다 더 순수한 방학생활이 있을까 싶다.


그 와중에도 한 가지 고무적인 일이 있었는데매일 정오가 넘어야 겨우 일어나는 아이가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맡은 역할을 위해 일 년 내내 아침 7시면 집을 나섰다는 것이다그리고 좋아하는 연예인 팬 사인회에 가기 위해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결국 성취해내는 성실함을 보면서 이런 바람직함이 더 자주 목격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또 좋은 점은 가족끼리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만 가능한 진심 어린 대화를 자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주로 부모성토대회였지만 말이다아이가 자신의 마음속 복잡한 감정들을 알고 싶다고 해서 심리검사도 받고 좋은 상담 선생님을 만나 수차례 마음을 탐험하는 시간도 가졌다그렇게 대체로 멍 때리고 빈둥거리며 10개월 정도 지나니 그제야 공부 걱정을 아주 조금 하는 것 같았고고등학교 입학을 한 달 앞두고 수학 문제집 한 단원 정도를 미리 들여다보는 것으로 아이는 긴 방학을 마무리했다이후 3년간 동네 일반 여고에서 한 살 어린 동생들과 무난히 지내다 졸업했다가끔은 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언니 역할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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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길을 걷다가 때마침 발견하는 풍경

 

  그 후 몇 해 동안 우리 가정의 특별한 경험을 궁금해하는 분들에게 대단한 듯 대단하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이 생겼다그러다가 입시경쟁에 찌들어 앞만 향해 달려가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 느릿느릿 걷는 시간도 의미가 있음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어져서남편과 함께 숨쉬는방학 꽃다운친구들이라는 청소년 자유학년제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다꽃다운 나이열여섯 살 이팔청춘 청소년들에게 빈둥거리는 시간을 돌려주자는 취지로 만든 모임이다. 2016년에는 열한 명이 일 년의 자발적 방학을 선택했다사 년 전 딸은 혼자 외롭게 보냈지만이제는 꽃다운친구들로 만난 청소년들끼리 함께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꽃다운친구들은 일주일에 두 번 만나서 자(기탐구)(사활동)여 (행유희)(계형성네 영역 활동을 통해 자신과 세상의 맛을 느끼고 뜻을 깨닫는 배움과 사귐의 시간을 갖는다이틀 동안 밥 지어먹기생 활문 나누기책 읽고 글쓰기캠핑여행사진음악미술연극사람 책 도서관장애인복지관 방문놀러가기 등 다채로운 시간을 보낸다함께이기에 가능하고 즐거운 활동들이다.


자기이해 활동의 하나였던 덕밍아웃(덕질+커밍아웃)’시간이 내게 특히 인상 깊었다. 11인 11색의 개성미 넘치는 덕후들이 자신의 세계를 선보였는데 신발 디자인아이돌보드게임페이퍼 아트재즈애니메이션 등 그 종류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덕질의 깊이와 열정도 대단해서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었다자신이 좋아하고 에너지를 쏟는 일이 뭔지 모르겠다던 한 친구는 긴 고민 끝에 자신이 사람 얼굴과 이름을 오래 기억한다는 것사람에 대해 남다른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4월에는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미수습자 허다윤 학생 어머님을 초청해 얘기를 나누고 홍대 앞에서 열린 단체 피케팅에 참여했으며그 만남을 기억하면서 열한 명이 함께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어 추모하는 시간도 가졌다이렇게 부지런히 이틀을 함께 보내고 나머지 5일은 최대한 빈둥거릴 자유를 누리기 위해 집에 서 각자 보낸다.


작년꽃다운친구들 설명회에 취재를 온 기자가 일 년의 방학이 꿈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느냐고 묻자 딸은 안식년이라는 대담한 선택 을 해보았기에 앞으로도 꿈을 찾아갈 때 주도적으로 조금은 대담하게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다소 애매모호한 대답을 했다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열두 달 동안 잘 쉬었지만 소위 진로앞으로 어떤 전공을 선택할지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선명한 그림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아이가 보낸 일 년의 방학은 시간 낭비였을까앞서 말했듯 나도 처음엔 아이가 입시전쟁 속에서 덜 고생하길 바라며 공부 목적이라도 찾아보라는 의미로 안식년을 제안했었다그러나 딸 입장에서는 질리도록 쉬어본 후 양심상 공부 좀 해야겠다는 가책 정도를 느꼈지뚜렷한 꿈을 찾고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까지 생긴 것 같지는 않았다다만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엄마아빠도 관찰하고느린 걸음으로 세상을 구경하면서 그 시간과 그곳을 충분히 살았던 것이다.


요즘 꿈이 없다고장래희망이 없다고 걱정하는 초등학생들을 자주 본다중고등학생은 장래희망이나 원하는 직업이 없는 것을 아예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분위기다해마다 3월초 학생 조사서에 부모가 희망하는 자녀의 직업을 써야 하는 것은 내게도 고역이다빨리 진로를 정하라고 재촉하는 이 세태가 바람직한 것 같지는 않다진로는 직업을 정하는 것이 아닐 테고 학교 현장에서도 꼭 그렇게만 접근하는 것은 아니겠지만,진로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체감하는 진로교육은 사실상 직업 찾기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어린이청소년 시절에 자기 적성을 찾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진로탐색 과정에서 직업 적성직업 흥미검사 등을 통해 단서를 얻기도 하지만 참고자료일 뿐 검사결과가 그 아이를 다 말해주지는 못한다.


느리게 걷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 분명 있다바삐 지나갈 때는 못 보는 나 자신과 세상의 다채로운 풍경이 그것이다그 안에서 자신의 흥미적성의 희미한 실마리를 조금씩 맛보는 것이 청소년기에 경험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그런 의미에서 딸의 대답은 참 정직하다긴 휴식을 선택한 자신의 용기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모르는 인생의 여정에서 뭔가 영향력을 발휘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는 말이다.


이 기간을 통해 비교적’ 좋아한다고 알아차린 분야로 대학 전공을 정했지만이 또한 진로의 일부분일 뿐 인생 전체를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진로는 적성을 발견하자마자 후딱 정해버려야 할 어떤 과녁이 아니라자신과 세상을 알아가며 끊임없이 적응하고 가꾸어가는 과정 그 자체이다지금 꽃다운친구들도 아홉 달째 느슨한 시간표로 천천히 걸으면서 미처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다양한 인생 선배들을 만나 넓은 세상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뿐이지만 이 시간 자체가 일 년 뒤서기로 작정한 아이들의 진로인 셈이다이들이 계획하지 않고 의도하지도 않은 소중한 풍경들을 감상하고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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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안식년에 쌓은 엄마 내공

 

  청소년기 아이들이 스스로 잘할 수 있다고알아서 하겠다고 선언할 때부모들의 본능적이고도 자연스런 반응은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내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와일 수 있지만나는 그 일 년 동안 의지적으로 반응을 다르게 해본 셈이다아이가 잘해낼 것을 굳건한 믿음으로 믿어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을 지지해 주는 쪽으로 말이다.


어쩌면 잘 못할 것을 알고도 허락하는 것에 가까웠다자기 힘으로 자기 삶을 살아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맷집이 생길 수밖에 없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부모라는 울타리 안에 있을 때 실수와 실패를 경험해볼 수 있다면 긴 인생 살아가며 이보다 더 좋은 배움이 있을까시행착오 없는 매끈한 성공은 매력이 없다그래서 웬만한 간섭을 제거하자결국 제 힘으로 살아갈 아이들이다연습할 기회를 빼앗지 말자고 지금도 되뇐다.


어느새 경력 21년차지만솔직히 뭘 해도 안 해도 늘 불안한 이 부모 노릇을 빨리 졸업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그런데 부모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부모가 뭘 하든 안 하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고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다그러니 괜한 걱정과 불안은 모두 안드로메다로 보내야 하지 않을까갈수록 그게 참 아이러니다 .


더불어부모의 본능적 불안을 견디는 데에는 부모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가꾸는 것이 가장 탁월한 효과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자신을 살뜰히 보살피다 보면 아이 삶에 시시콜콜 간섭할 한가함이 없어진다그러다 보니 나는 점점 아이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기회를 내어주는 괜찮은 부모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이 또한 아이러니다.


순수하게 아이의 시간을 자기 것으로 되돌려주고 싶은 부모아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게 연습의 기회를 주고 싶은 부모잃어 버린 웃음과 아이의 고유성을 되찾고 싶은 부모들이 혼자 고민하지 않고 꽃다운친구들과 함께하고 있다.


꽃다운친구들은 자녀와 부모가 함께하는 가족동행 프로그램이므로 한 달에 두 번 정도 부모 모임을 열어서 연애 시절을 소재로 수다 를 떨기도 하고아이들의 성격유형을 엿보며 부모로서 성찰의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몸을 부대끼며 놀기도 하고진학지도 강연도 들었다또 중년의 건강관리한국의 인권문제 등 부모들끼리 품앗이로 배움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사실 삶에 지친 중년의 부모님들이 모여서 무엇을 하는 것이 무리이지 않을까 처음엔 우려도 했는데 자녀의 안식년이라는 공통분모만으로도 든든한 동지애를 나누는 모임이 되어가고 있다무엇보다 자기 아이 또래들을 가까이서 관찰하며 대부대모의 심정을 가지게 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공동체라서 누릴 수 있는 풍성함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이 꽃다운친구들을 선택한다는 것은 학교에서 또 다른 학교로의 탈출이 아니라 가족구성원으로의 귀환이다건강한 독립을 위한 토대로서 안정감 있는 가족 관계친밀한 관계를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다그러나 일 년의 방학을 또 하나의 스펙 쌓기 아이템으로,다음 단계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충전 기간으로혹은 확실하게 진로를 찾는 시간만으로 여기는 부모님들은 분명히 실망할 것이다부모가 흑심을 품으면 그 방학은 이미 방학이 아니다자기 의지 없이 부모 손에 끌려온 아이들은 긴 방학을 부모의 감시 가운데 괴롭게 보낼 것이 분명하다꽃다운친구들은 이제 겨우 첫돌도 지나지 않은 걸음마 시기를 보내고 있다다만 작년에는 우리 딸아이의 희귀하고 희미한 사례에 기댄 담대한 예언이 전부였다면이제 열한 가정의 생생한 증언이 마련된 셈이다아직 한 줌이지만 너무도 귀한 한 줌이다이들의 용기와 결단이 쌓이다 보면 오늘날 아이들에게 유해하기 짝이 없는 교육환경에 힘찬 똥침을 날리게 될 테니 말이다.


무슨 방학을 일 년씩이나길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백 세 인생 중 겨우 100분의 1일 뿐이다



<꽃다운친구들>은 1년의 방학을 누리는 청소년과 그 “가족 모두의 모임”임을 누누이 강조합니다. 대개 청소년기는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청소년들의 몸부림과 방황으로 자칫 부모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기 쉽기 때문에 부모-자녀관계가 2인칭이 아니라 3인칭이 되는 시기라고도 하지요. 그러나 긴 방학을 선택한 꽃친 아이들은 오히려 충분한 휴식으로 몸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부모님과 소통의 양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이야기를 자주 많이 나누다 보면 소통의 질 또한 깊고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제 경험에 기초한 추측이긴 했지만, 꽃친 1기가 7개월을 보낸 지금까지 그 반대 성격의 제보를 들은 적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추측이 현실이 된 것 같아서 참 다행입니다.

 

1년전 한 두 시간의 설명회, 짧은 글 몇 편 정도에 마음을 내어주시고 유별난 선택을 감행하신 열 한 가정의 용기에 저는 두고두고 감동을 받습니다. 지금 때가 어느 땐데 말이죠. 여름방학기간에 인근 호텔, 모텔을 숙소로 기숙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원이 성업중이라는 보도를 며칠전 접했습니다. 방학내내 슬리퍼 끌고 학원과 모텔만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 한달 남짓 되는 그 짧은 방학마저 아이들에게서 빼앗는 이런 세상에서 한 해를 통째로 쉬게 하다니! 정말이지 꽃친 부모님들, 범상치 않으신 거죠.

 

별난 한 해를 보내는 부모님들 모임, 만나서 뭘 하는지 궁금하시죠? 헤아려보니 7월까지 무려 열 두번이나 모였고요. 한 달에 두 번, 그러니까 격주모임이고 한번은 배우는 시간, 또 한번은 사귀는 시간으로 만났답니다. 평일 퇴근 후 저녁과 토요일 오전시간을 이용했고요. 꽃친 활동을 함께 의논하는 시간도 물론 포함되어 있지요. 또 정기적 모임 외에도 아이들 엠티나 여행 등에 도우미로 자원하고 수고하신 부모님들은 자연스레 현장에서 고기 구워먹으며 비공식 교제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상반기 부모모임을 평가하며, 우리는 ‘꽃친이라서’ 우리끼리만 할 수 있는, 우리끼리만 통하는 그런 이야기를 편하게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부모님들 의견이 많아서 8월부터는 먹고 즐기며 자유로운 사귐 시간 중심으로 모이려고 합니다. 상반기 모임을 밀도있게 제공하려는 욕심이 앞서는 바람에 깊고 살가운 만남을 놓친 것 같습니다. 노잼 대표부부의 약점 탓이라 여기고 겸허한 마음으로 반성하는 바입니다.^^;;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모임을 위해 부모님들의 열렬한 참여를 부탁드려야겠습니다. 사실, 오산,수원,일산,파주 등 원근각지에서 달려오시느라 시간이 늘 빠듯한게 함정~ㅜㅜ






1월

사귐의 시간 <응답하라 연애시절>

온가족 송년모임 이후 부모들끼리의 서먹한 첫 만남을 우리가 왕년에 제일 잘 나가던 때, 연애시절 이야기로 풀어 가다보니 몸은 중년이지만 얼굴표정만큼은 꽃다운 나이로 돌아간 듯 했지요. 호호호~부끄부끄~

배움의 시간 <쉼이 있는 교육>

장신대 박상진 교수님을 모시고 쉼의 의미에 대해 말씀 듣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쉼’은 본질을 회복하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진정한 나(true-self)를 만나는 시간이며, ‘안식은 축복이고 저항이며 대안’이라는 구절을 인용하시며 “꽃친도 축복이며 저항이며 대안”이라고 팍팍 격려해주셨답니다.


 

2월

사귐의 시간 <자녀 성격유형 이해하기>

강사이자 작가이신 꽃친 채윤맘께서 꽃친 아이들과 함께 한 자기이해 웍샵 내용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타고난 성향에 대해서 그리고 부모님들의 성격유형과 아이들의 유형이 어떤 케미를 만들어 내는지를 바라볼 수 있도록 안내해주셨습니다.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시간이었지요.게다가 핸드드립커피 도구일체를 준비해오셔서 손수 내려주셨는데 아주 그냥 향기가 그윽했어요. 이날 비로소 핸드드립의 매력에 빠진 부모님도 계십니다.

배움의 시간 <비폭력대화>

정하린 선생님께서 부모 자녀의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대화를 소개해주셨어요. 연결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찾아보고, 느낌 카드를 이용해 우리 스스로의 마음과 만나보는 시간도 가졌구요. 십년 넘게 해오던 아이와의 대화패턴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지만 잘 될 때까지 부단히 연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을 불러일으켜 주셨습니다.

 



3월

사귐의 시간 <기적의 모험놀이>

방승호 아현산업정보고 교장선생님은 이제 사사로이 만날 수 없는 소위 "뜬" 분이신데, 꽃친 부모님들의 미팅 요청을 들으시곤 흔쾌히 응해주셨어요. 두시간 동안 한 눈 팔 수 없도록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주시고, 손수 몸과 몸을 부딪히며 마음의 벽을 넘는 모험놀이도 인도해주셨는데, 배꼽이 몇개 빠졌답니다. 뒤에 들은 이야기인데, 이 날 이후 말을 놓기로 한 동갑내기 40대 아빠들이 있었다네요. 

배움의 시간 <오디세이학교>

올해로 2년째 오디세이학교를 이끌고 계신 정병오 선생님께서 자유학년제를 경험하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해주셨어요. 그 시간을 통해서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 어른을 신뢰하게 됨, 삶에 대한 기대’가 생겼다고 고백한답니다. 아이들이 ‘속사람(내면)의 힘이 강한 사람’으로 자라도록 돕고 계신다는 말씀에 희망 한 줄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4월

사귐의 시간 <악동부모님과 함께 하는 만찬>

이름도 생소한 봄나물 골동반이라는 고급진 저녁식사를 하면서 자유방담 했습니다. 자녀들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면서 ‘우리 집이나 그 집이나 비슷하구나’하며 피차 안심하는 부모님들이 여럿 계셨습니다. 꽃친을 한결같이 응원해주시는 악동뮤지션 부모님이 와주셔서 자리를 빛내주셨지요.

배움의 시간 <꽃친 영상&사진 작품발표회>

한달 동안 끙끙대며 꽃친과 자신을 표현하는 사진과 영상을 만들어낸 열한명의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고,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이 이들을 축하하는 관람객이 되는 북적북적한 날이었습니다. 자기 작품 설명을 하느라 다소 긴장했지만 내심 으쓱으쓱해하던 아이들 표정이 기억납니다. 


5월

사귐의 시간 <병원사용설명서>

꽃친 지우아빠님은 동네 주치의를 소명으로 삼는 의사샘이시랍니다. 부모든 자녀든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질병 아니 병원(ㅋㅋ)에 대한 두려움을 다루는 법들을 조근조근 마사지 해주시듯 설명해주셨어요. 지우가 어렸을 때 다소 약골이어서 겪었던 에피소드들도 들려주시면서 말이지요. 대한민국 모순적인 의료현실 속에서 발휘할 지혜도 이모저모 조언해주셨는데... 가장 자주하셨고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은 "물 많이 드세요"였습니다.^^ 

배움의 시간 <열일곱, 즐거운진로탐색기>

아름다운배움 부설 행복한공부연구소 박재원소장님의 우정 출연으로 유익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부모교육전문가가 아닌 학부모대변인을 자처하시며 준비한 ‘착한입시설명회’의 맥락으로 강의해주셨는데, 입시, 진로 관련 정보도 유익했지만, 강의 핵심으로 ‘가족’의 중요성을 다루시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게 바로 꽃친이 추구하는 가치이지 말입니다.



 

6월

사귐의 시간 <희연이네 송별모임>

해외로 발령이 난 아빠를 따라 온가족이 이주하게 되어, 희연이 가정과 아쉬운 작별을 했어요. 17년간 자주 수술을 하며 지내야했던 희연이를 기르며 겪은 기쁨과 수고를 담담하게 나눠주셨고, ‘힘듦이 있다면 그저 버티는’ 부모노릇을 말씀하실 때 특히 맘 깊이 공명이 되었어요. 아울러 낯선 땅에서의 새로운 삶을 응원했습니다. (글고 6월 배움의 시간은 아이들의 강화도 이박삼일 캠핑에 동참하는 일정에 많은 분들이 시간을 내면서 한 박자 쉬었구요. 쉬어가는 김에 무지 더울 것이 확실한 7월과 8월에는 월 1회로 줄였다가, 가을부터 다시 두배로 찐하게 만나자고 전격 결정!)


7월 

사귐과 배움의 시간 <인권이야기>

꽃친 한슬아빠님은 우리나라에 머무는 외국인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시는 공익변호사세요. 잘 나가던 진로를 이 땅의 나그네들을 위해해 변경하며 겪었던 감동적인 지난 날 이야기는 물론 우리나라가 국내외에서 방치하고 있는 여러 아동들의 비인권적 현실을 나누어주셨는데... 눈물이 날 지경이었어요. 사실 꽃친은 일종의 교육운동이라기보다는 아이들답게 자라도록 돕는 인권운동이라고 늘 생각해 왔는데 이날 한번 더 확신하게 되었답니다. 




아, 지난 봄  꽃친 커뮤니티에 정말 정말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혜진이네집은 막내 남동생 민호가 태어남으로써 4남매가 되었답니다. 영지네가 4남매로 가족수로 1등이었는데 이제 혜진네와 함께 공동1등이군요. 꽃친들은 민호랑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지요. 활기찬 생명의 꼬물꼬물거리는 성장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는 특권이 꽃친에게 주어졌습니다!  어머님이 혜진에게 '내년에도 쉬면 어떠니? 은근히 도움된다 너~' 하셨다지요.^^ (혜진이의 행복한 한숨소리가 들리는듯 합니다.)  살아 움직이는 생기충만한 공동체를 실감하는 나날입니다. 



지난 해 11월에 강의했던 사교육탈출: 길을찾다 길이된사람들 2강 리뷰가 시사인에 실렸어요. http://bit.ly/2k9XISH

기자님이 찰떡같이 요약정리해주셨어요. 이 기사 덕분에 <꽃다운 친구들>이 또 많은 이들에게 소개된 것 같아요.

한때 시사인에서 많이 본 기사 2위까지 올라가는 걸 보고 깜놀!


"학교 쉬랬더니 1년 동안 잠만 자던데요" 라는 제목이 주의를 끌지 않았나 추정해봅니다. 

(은율아, 지못미~!!! 시사인에서 붙여준 제목야~ 엄마가 한 게 아니야~)


거슬러올라가보니 꽃다운친구들의 처음 씨앗은 2009년 2기 등대지기학교였습니다. 

어느 강의에선가 유럽의 안식학년에 대해서 듣고서 바로 가슴이 벌렁거렸거든요. 

저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회원으로서 등대지기학교를 수강하면서 좋은 배움의 시간을 가졌을뿐만 아니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과 만나 친구가 되는 기쁨도 누렸습니다. 

강좌 제목처럼 길을 더듬더듬 찾아가다가 좋은 단체와 동지들을 만나 어떤 부모로 살고 있는지를 강의 시간에 나누었습니다.

사실, 길을 찾다 길이 '된' 사람이라는 제목에 저를 가져다 붙이는 것은 매우 황송한 일이구요.

길을 찾다가 '여기가 길인가봉가?' 하고 아직도 여전히 가고 있을 뿐입니다. 


아, 저는 기사에 '심리상담가'라고 소개되었지만, 딱 적절하지는 않고요. 

제가 가진 자격은 청소년상담사, 사회복지사이고, 하는 일은 부모교육과 가족상담입니다. 

소개할때 다소 어정쩡한 면이 있었는데, 이렇게 자격과 하는 일을 구분하니 소개하기 좋네요. 

앞으로는 한마디로 소개할 명칭이 생겨서 한결 홀가분합니다.  꽃다운 친구들 대표요 ! ^^


IVF학사회 소식지인 <소리>에 실린 제 글입니다.

은율이와 함께 한 긴 방학의 알파와 오메가를 쓰느라 조금 길어졌습니다.

http://ivfgcf.tistory.com/314 (링크 오류로 전체 글 퍼옵니다.)


열여섯 살, 꽃다운 친구들에게 주는 선물




엄마: 은율아, 너 중3 졸업한 후에 1년간 transition year1라는 거 해볼래?

  딸: 그게 뭔데?

엄마: 유럽 몇몇 나라에서는 고교진학 전에 진로탐색을 위해서 특별한 시간을 갖는 제도가 있대. 자신이 뭘 좋아하고 뭘 잘 하는지 알아가는 시간이 되겠지. 솔깃하지 않니?

  딸: 그럼 학교 안 다니고?

엄마: 응. 아일랜드나 덴마크, 영국 등에는 그걸 위한 학교나 프로그램이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런 시스템이 없으니까 개인적으 로 그냥 쉬면서 해야겠지?

  딸: 1년 뒤에는 한 살 어린 애들이랑 고등학교 다니고?

엄마: 그렇지. 1년 지내보고 혹시 고등학교 진학 외에 대안학교나 검정고시 등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어. 

  딸: 에이~ 싫어. 학교 안 다니는 건 좋은데 결국 한 학년 꿇는 거잖아. 그건 싫어.

엄마: 그래? 싫음 말고... 뭐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거야.


2009년 봄, 중학교에 입학한 딸과 나눈 대화입니다. 저는 그 때 ‘사교육걱정없는세상2’이 개설한 ‘등대지기학교’ 강의를 듣고 있던 수강생이었습니다. 큰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그간 헐렁하게 해온 엄마노릇을 더 잘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부담을 가진 시점이었고요. 그전까지는 애써 외면해오던 동네의 목소리 큰 아줌마들의 사교육정보가 귀에 꽂히면서 팔랑귀가 되어 우왕좌왕할 때였는데 등대지기학교가 이 학부모의 정신줄을 잡아주었습니다. 어떤 분의 강의였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가장 매력적이었던 것이 바로 ‘transition year’, ‘gap year’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바로 딸에게, 남편에게 전해준 것이지요. 딸은 부정적이었지만, 남편은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열린 귀로 들어주었습니다.


중학교 첫 시험인 중간고사를 준비하던 아이의 어깨너머로 요즘 교과서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어떻게 공부하는지 유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세상에나, 책은 훨씬 세련되어졌지만 30년 전 제가 공부하던 방식과 다를 바가 없이 대부분의 과목을 달달 외워야 하더군요. 즐거운 배움과 깨달음은 없고 오로지 입시를 위해 공부 기계가 되어 문제집을 풀며 중고등학교 6년을 보낼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목표나 동기가 없이 그저 좋은 성적을 위해 꽃다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그러나 제도교육을 벗어나 홈스쿨링이나 대안학교 등으로 아이를 교육하는 것은, 저의 귀차니즘이나 기타 여건 등으로 보아 가능성 10%도 되지 않는 옵션이었기에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망가지지 않게 잘 버티는 쪽으로 방향을 가다듬어야겠다, 정도만 마음먹었지요. 그러던 차에 매우 적절한 강의를 접한 셈입니다. 고교진학 전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알아보고 공부의 이유에 대해 조금이라도 자신만의 답을 가질 수 있다면, 고교 3년을 보낼 넉넉한 동력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jarmoluk(pixabay.com)



그 다음해, 2학년이 된 딸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 사이 살짝 긍정적인 쪽으로 기울어진 아이에게 3학년 여름방학까지 구체적으로 고민해보자 제안하고, 우리 가족은 이후 1년 동안 이따금씩 그 시간이 주어지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부모인 우리는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지 소위 ‘견적’을 내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실 저는 아일랜드처럼 3가지 정도의 관심직업을 직접 체험해보는 것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런 시간이 진로탐색과 학업 동기부여에 매우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제 딸의 경우, 음악에 관심이 있어 보이니 뮤지컬이나 방송음악 등 관련된 곳에서 비록 허드렛일을 하더라도 곁에서 기웃거릴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싶었던 거지요. 결과적으로 딸아이는 부모의 격려에 힘입어 안식년을 작정하고 고등학교 배정신청을 보류했고, 1년간 무소속 청소년으로 자유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처음에 제안했던 직업체험 기회는 현실적 제약이 많아서 쉽지 않았고, 결국 그 시절 아이는 강아지 기르기, 드라마 시청하기, 음악/미술학원 다니기(각각 겨우 두 달씩), 약간의 책읽기, 사진 찍기, 아빠와 함께 여행하기, 엄마와 동네도서관 가기, 집안 살림 돕기 등이 일상이었답니다. 저는 그때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면서 야간대학원 공부를 시작한 주경야독 학생이었기에 백수인 딸이 참으로 쓸모가 있었습니다.


모든 삶에서 ‘빨리 빨리’를 외치며, 학습조차 몇 년씩 선행을 해야만 살아남을까 말까 하는 이 무시무시한 정글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긴 했습니다. 하지만 일관되게 빈둥거리는(듯 보이는) 아이를 한두 달도 아니고 열 달씩 지켜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예상하실지 모르겠지만, 아이의 일과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한 것은 단연코 ‘잠’이었거든요. 그러니 딸이나 우리 부부에게 종종 불안이 밀려드는 겁니다. 규모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다, 괜히 시작했나, 이러다 고등학교 가서 뒤쳐지는 거 아닌가 등등. 용감하게 시작했으니 그래도 끝까지 가보자고 마음을 다잡으며 흘러가는 대로 더 두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자기 나름대로 고독한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돌아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는 듯 보였는데, 이는 고3이 된 현재까지 마음의 불을 지피는 땔감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딸의 안식년을 곁에서 지켜본 엄마로서 제가 배운 것은 ‘불안을 다스리는 법’입니다. 비법이 있는지 물으신다면 변변히 드릴 말씀은 없고요. 제 짧은 경험으로는 좌충우돌하는 아이 옆에 ‘그저 버티고 있기’밖에 다른 방법은 없지 않을까 합니다. 불안을 온몸으로 맞이하고 버티다 보니 그럭저럭 일 년이 지났고, 그 시간은 아이에게 앞으로 또 본의 아니게 다가올지도 모를 불안한 시간을 엄마로서 바라보며 견딜 내공을 길러주지 않았나 조심스레 평가해봅니다. 이 시대 부모들은 자녀의 미래를 위해 많이 고민하고 물심양면으로 헌신하고 희생합니다. 딸에게 남다른 1년을 제안하고 허락한 저 또한 어떤 면에선 자녀교육에 뭔가 특별한 열심 또는 흑심을 품은 사람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습니다. 온갖 사교육에 올인한 부모들이나, 일 년간 푹 쉬는 시간을 제공한 저희 부부나 기저에는 ‘자녀가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똑같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단, 열심이 있는 부모일수록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방향이 잘 잡혀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그 방향은 아이가 스스로 살아갈 힘을 갖추게 하는 것이고, 내 품에 있을 때 이런 자유롭고 느긋한 쉼을 잠시 누리며 ‘자가발전’하도록 내어버려두는 것이 부모역할이라고 생각했기에 딸아이에게 쉼을 선물할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청소년 부모로서의 발달과업을 성취하느라 부모로서 힘 빼는 데 힘을 썼습니다. 무심코 써놓고 보니 참 역설적입니다만, 좋은 부모 되기 위해서 우리 부모들은 기본으로 힘을 잔뜩 주고 있기 때문에 힘을 빼려면 무척 힘이 듭니다. 자녀양육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잊으면 더욱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요. 많이 뺐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뺄 힘이 남아있음을 저는 요즘도 종종 경험합니다. 



ⓒUnsplash(pixbay.com)



제 딸아이의 특별한 경험을 듣고 관심을 갖게 된 지인들이 이것저것 궁금해 하시더군요. 혼자 하자면 엄두를 내기 어렵지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청소년들이 함께 모이면 덜 막연하고 또 풍성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난봄부터 남편과 함께 관련 프로그램을 준비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서울시교육청에서 ‘오디세이’라는 고교자유학년제 프로그램3에 시동을 걸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도권에서도 무모한 입시경쟁 시스템에서 고통 받는 청소년들과 부모들의 소망을 감지하고 장을 열어준 것입니다. 또한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도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책에서 덴마크의 인생설계학교(After school)4를 소개하며 인생의 전환기마다 인생을 설계하는 시간을 갖도록 돕는 인생학교를 세울 계획이라고 합니다. 한번 학교에 입학하면 대학 입학까지 무조건 앞으로 달려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옆을 봐도 괜찮다고, 옆을 보는 게 필요하다는 시각이 많은 분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 것 같습니다. 이 또한 바람직한 분위기입니다.  


우리 부부가 준비하는 ‘꽃다운 친구들’(이하 ‘꽃친’)은 다음 세대를 위해 창의적인 휴식을 제공하는 과정입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교 진학 전 1년 동안, 고교배정을 미루고 학업을 쉬면서 부모와 함께 진로탐색과 인생설계는 물론 자기탐구 및 시험걱정 없는 공부, 봉사와 여행, 친구사귀기와 놀이 등을 통해 열여섯 살 이팔청춘 꽃다운 나이의 아이들에게 자기 호흡으로 숨 쉬게 하는 1년짜리 긴 방학 프로그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12~20명, 한 클래스 정도의 중졸(?) 남녀 아이들과 1월부터 12월까지 정기적으로 주 1~2회 정도 만나면서 자발적인 과제 중심으로 부모와 함께 자신의 미래를 구상하는 시간을 제공하려고 합니다. 어떤 분 말처럼 부모를 위해 “공부해 드리는” 아이들이 아니라, 자기만의 이유로 공부하는 꽃다운 친구들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기간에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남편 말을 빌리자면, 이런 모색들이 입시서열주의라는 제국의 질서에 의미 있는 균열을 내는 영악한 실천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비 ‘꽃친’ 부모님들은 자녀 한명을 위한 시도이지만 장차 이 나라의 미친 교육열을 식혀주는 흐름에 한몫을 하게 되는 셈이라고나 할까요. ‘꽃친’은 덴마크의 ‘애프터스콜레’처럼 일 년간 빡쎄게 진로를 개척하는 기숙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서울시교육청이 앞장서고 있는 ‘자유학기제’와도 다르고, 1년간 대안교육 프로그램을 학과목과 동시에 제공하는 ‘오디세이학교’와도 다릅니다. 중학교를 졸업하는 겨울방학에 3개월 정도 합숙하며 집중해서 인생을 고민하는 ‘인생학교’와도 다릅니다. 1년을 통째로 쉬는 개념입니다. 뒤서가면서 인생의 호흡을 고르려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앞으로 꽃친 블로그(kochin.tistory.com)에 채워갈 예정입니다.



ⓒstrecosa(pixabay.com)




은율이 안식년 뒷이야기

  

엄마가 품은 최초의 흑심이었던 아이의 진로체험은 애초에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1년간 내세울 만한 특별한 성취도 없어 보여 딸의 안식년에 대해 내심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물론 그런 걸 의도한 것도 아니면서 은근히 기대하던 얄궂은 엄마 마음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공립고교 진학 후 1년을 보낸 어느 날, 부녀간 심야토크에서 한 딸의 이야기가 제 무릎을 치게 하더군요. “우리 반 동생들이나 한 학년 위 내 친구들 모두 너무 개념 없이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학교생활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러다가 입시 앞두고, 대학에 가서, 아니면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하다가 멘붕되고 인생고민하면서 멍 때리는 시간이 있을 거 같아. 근데 나는 작년에 미리 멍 때리는 시간 넉넉히 가져서 참 다행이야.” 아이는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고 쉬는 동안 실컷 멍 때리며 실패와 한계를 맛보고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해볼 수 있었고 부모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여유를 누릴 수 있었고요. 느릿느릿한 걸음이었기에 하나님 사랑을 이전보다 진하게 맛보았고 이웃과 세상을 돌아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이는 그렇게 성장했다고 믿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진짜 성장인 그런 성장 말이지요. 그래서 앞길이 창창하리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는 건 아닙니다. 그저 앞으로 다가올 실패를 견딜힘을 장착한 것 같아서 안심이 된다는 말이지요. 




이수진

20년째 엄마노릇하며 고3 딸과 중2 아들,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출산 후 10년간 경력단절여성으로 지내다가  나에게 맞는 일을 슬금슬금 찾아가는 중. 건강한 가정을 세우는데 보탬이 되기를 바라며 부모대상 강의와 가족상담을 조금씩 하는 프리랜서인데, 앞으로는 '꽃다운 친구들' 대표라는 타이틀로도 불릴 예정이라 살짝 심장이 쫄깃한 상태로 '꽃친' 자원봉사자인 남편과 함께 준비하고 있다. 


















VOL.221│2015.08+09

교육, 새로운 바람




 


  1. 영국(Gap Year)이나 아일랜드(Transition Year)에서는 잠시 학교교육을 중단하고 봉사, 여행, 진로탐색, 인턴, 창업 등의 활동을 경험하여 향후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창조의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Gap Year) 등의 일부 대학에서는 우수 학생들이 중도에 대학교육을 포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입학 전후에 자신의 능력, 전공, 향후 진로나 직업을 탐색할 수 있도록 일정한 휴식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 출처: 글로벌 리포트 아일랜드 전환학년(Transition Year) 프로그램의 성과와 시사점, 윤형한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부연구위원 [본문으로]
  2.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비교육적 입시 사교육 부담의 근본 원인을 제거함으로 행복한 교육을 만들고자, 국민들 스스로가 전개하는 자발적 대중 운동이다. - 출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식 홈페이지 [본문으로]
  3. 오디세이 학교는 고1 학생들에게 획일적인 교과 중심의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삶을 돌아보며 진로를 탐색할 시간과 여유를 주고 창의적, 자율적인 대안교육과정을 통해 학습 의욕과 학업능력을 갖춘 학생으로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 미래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고 변화를 주도하는 창의적인 진로 개척 역량과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자율적 시민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체험 중심의 교육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본문으로]
  4. 덴마크에서는 약 40퍼센트의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Afterschool(인생설계학교)에서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지 설계한다. 대부분 기숙학교 형태의 학교를 선택한다. 종합교육을 하는 곳도 있고 체육, 음악 등 특별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곳도 있다. - 출처 :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오연호 지음


몇몇 유치원에 부모교육 컨설팅을 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유아부모들을 상대하는 선생님들의 고충을 듣게 되지요. 소위 '진상'부모들 이야기가 빠질 리 없구요. 듣다보면 샘들 참 힘들겠다 싶어요. 교사들인데 아이들 '교육'보다는 부모 대상 '감정노동'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듯합니다. 컨설팅 하는 입장이라서 그런지 선생님들께 더 감정이입이 잘 됩니다.  내 자녀들이 이미 커버린터라 올챙이적 생각 못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래 펌글에 따르면, 본능대로 자녀를 사랑하면 진상부모대열에 빠르게 진입할 수 있다는 사실! 글을 쓰신 서천석 선생님 말대로 '깊고 지혜로운 사랑'을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두,,,어떻게! 무려 '본능'을 누르냐고요 ㅠㅠ 애초에 이럴줄 알았으면 과연 부모될 엄두를 낼 수나 있었을까요?  

* 가뭄에 콩 나듯 올라오는 꽃친 새글! 앞으로는 주기가 좀 더 짧아질 것 같습니다.이 블로그가 일방통행으로 굳어버릴까 걱정됩니다. 눈팅도 감사하지만 격려성 댓글은 더욱 애정하겠습니다.흐흐. 방명록도 있어요. 인사 남겨주시면 이 블로그가 더욱 훈훈해지겠지요. *


<본능을 누르고 아이에게 기회를 주기> --  서천석(소아정신과의사) 

얼마 전 한 분이 아이의 유치원 문제로 상의를 해왔다. 아이가 유치원을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한 친구가 자기를 놀이에 껴주지 않고, 자기가 그 친구와 함께 놀려고 다가가면 그 친구는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는 것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속상하지 않을 수 없다. 분하기도 하고, 조금 창피한 기분도 들 것이다.  부모도 아이 이야기를 들으니 화가 났다. 의도적으로 배제하다니, 이것은 왕따가 아닌가? 그래서 유치원에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친구 문제로 속상해서 유치원을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그 친구가 우리 아이를 왕따시키고 있다고 강력히 항의했다. 유치원 교사는 놀라며 자세히 살펴보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고 1주일. 교사가 부모에게 전화를 했다. 그 아이가 왕따를 시킨다고 볼 수는 없고, 그냥 다른 아이들이랑 더 친하다보니 이 아이와는 놀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둘이 친해질 수 있도록 지도해 보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다. 속도 상하다. 그 아이는 왜 우리 아이랑 안 노는 것이지? 얄미운 마음도 든다. 혹시 선생님이 너무 문제를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든다. 그래서 다음 날 유치원에 가는 아이를 따라 나선다. 선생님에게 강력히 항의하고, 상대방 아이 부모에게도 아이 교육을 제대로 시켜달라고 각별히 당부한다. 엄마가 흥분해 항의하니 다들 엄마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준다. 역시 말하기 잘했다. 내가 아이를 제대로 도운 것만 같다. 행복한 결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적잖은 부모들이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이 이렇다. 아이에게 생긴 문제를 모두 다 해결해주려 한다.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까지야 얼마든지 좋다. 그런데 그 감정의 원인까지 부모가 나서서 해결하려면 아이에게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아이는 자기에게 감정이 생긴 이유를 자기가 다뤄야 한다. 아직 힘이 부족해 다 해결해 낼 수는 없지만 자기 스스로 다루는 경험을 해야 아이가 성장한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끼리도 사이가 나쁠 수 있다. 서운한 마음이 들 수 있다. 그런 서운한 마음은 인간 관계의 흔한 모습이다. 서운한 마음을 느끼고, 스스로 생각해 보고, 다른 방법도 써 보고, 다른 친구랑 친하게도 지내려 해보고 자기가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부모들이 나서서 아이들 관계를 적극적으로 조정하면 아이는 모든 문제를 부모에게 의존한다. 몸은 성장하지만 마음은 자라지 않는다. 관계의 기술이 늘지 않고, 불편한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 늘지 않으니 부모는 계속 할 일이 많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기가 피곤하다. 아이에게 반응해주기가 지친다.    부모가 할 일은 아이가 장기간에 걸쳐 당하는 부당한 대우를 막는 것이다. 그것을 넘어설 필요는 없다. 그런데 일부 부모는 아이가 당한 일에 자기 감정을 투사한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경험한 인간관계에서의 서운함을 아이 문제를 보며 떠올린다. 그래서 흥분하고 억울해 한다. 내 문제는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지만 아이만큼은, 아이 문제만큼은 제대로 처리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런 부모들이 너무 흔하다. 아이보다 더 억울하고, 아이보다 더 흥분한 부모를 보는 일이 너무 흔하다. 아이는 사라지고 부모의 감정만 남는다면 아이는 그런 부모의 감정에 휘둘릴 뿐이다. 세상이 너무 거칠게 느껴진다.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이의 말을 듣고도, 아이의 괴로움을 보며 견뎌줄 수 있다면 좋은 부모다.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손이 나가는 것이 부모의 본능이다. 아이의 슬픔을 보면 부모가 더 괴롭다. 괴로워서 얼른 그 슬픔을 끝내고 싶다. 그 본능을 누르며 아이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쉽지 않다. 정말로 아이를 마음 깊은 곳에서 믿고 있어야 기다려줄 수 있다. 깊고 지혜로운 사랑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1. 바다 2015.07.29 11:31 신고

    아이를 키우는 일 정말 나 혼자만 잘해서는 안 되는 일인것 같아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 바다 2015.07.29 14:17 신고

    잔디 깍기 부모라는 말도 있네요.
    최근 미국 명문대 자살과 관련되어서 나온 이야기 인듯 한데요.
    참고 해 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http://m.media.daum.net/m/media/world/newsview/20150728200010457

    • BlogIcon 꽃다운친구들 2015.08.07 15:29 신고

      감사! 엄마들 치맛바람은 세계적 추세인가보네요 ;; 별별맘들이 넘쳐납니다. 잔디깍기맘에 관련된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님 글도 읽게 되었어요.http://www.huffingtonpost.kr/joonkoo-lee/story_b_7908616.html 치맛바람 아닌' 치마태풍'이라는 표현을 이글에서 처음 봤습니다.^^;;

  3. BlogIcon 김미희 2015.08.06 07:55 신고

    정말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요즘 양육방식이 그 사람의 가치관을 오롯이 드러내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 . 본능에 가까운 것이었군요. 노력해야겠습니다.;;^^

    • BlogIcon 꽃다운친구들 2015.08.07 15:35 신고

      아이기르면서 숨겨져있던 내 진짜 모습을 보게 될 때 당황스럽더라구요. 부끄럽고 미안할 때가 많지만, 나중에라도 그게 부끄러운 줄 알고 미안한 일인 줄 안다는 건 성장의 시작이라고 나를 애써 다독이기도 한답니다.^^

  4. BlogIcon 꽃하님다님 2015.08.27 09:54 신고

    저를 되돌아 보게 됩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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