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친을 처음으로 페북에 소개한 글 (펌) - 2015.3.23 황병구


"드뎌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는 내년초부터) 아내와 함께 새롭고 즐거운 일을 하나 시도하려고 합니다. 가까운 분들에게 이미 알리기는 했는데 3월이 다 가기 전에 좀 정돈된 이야기를 주변에 더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이 필요하신 분들은 개인적으로 메세지 주시면 성의껏 답을 마련해 보겠습니다.

간단히 설명드리자면… 중학교 졸업 후 고교진학 전 1년간을 고교배정을 미루고 학업을 쉬면서 부모와 함께 진로탐색과 인생설계는 물론, 자기탐구 및 시험 걱정없는 공부, 봉사와 여행, 친구사귀기와 놀이 등을 통해 2x8 청춘 꽃다운 나이의 아이들에게 자기 호흡으로 숨쉬게 하는 1년 짜리 프로그램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희 부부가 홀로 감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움을 주시겠다고 한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이는 영업비밀에 해당하니 ㅋㅋ 차차 알리겠습니다.

[꽃다운친구들]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의 Inter-school(일명 숨쉬는 학교 ^.^)을 운영하는 거지요. 지금까지 예상하기로는 기수당 12명~20명 정도로 한 클래스 정도의 중졸(?) 남녀 아이들과 1월부터 12월까지 주 1~2회 정도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자발적인 과제 중심으로 부모와 함께 자신의 미래를 구상하는 시간을 제공하려고 합니다. 아마 그 기간 동안 부모님들과도 의미있는 미팅들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런 쉽지 않은 선택을 한 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고립감을 극복할 연대의 힘이라고 믿으면서요.

사실 이 일은 지난 2012년 아내가 춘천 한림대에서 반값등록금 혜택을 받으며 사회복지 석사과정을 밟는 동안, 저희 첫째 아이를 1년간 고교진학을 미루고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도록 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저는 새로 개통된 itx를 이용해서 거의 매일 춘천과 청량리를 오가는 고된 기간이었지만 이 기간을 통해 몇가지 얻은 것이 있었고, 그 중 하나가 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게 하프타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이런 착안을 하게 된 계기라면, 아내를 통해 알게된 북구(덴마크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Gap/Transition Year 프로그램이었지만(댓글에 해당 링크를 남깁니다.) 저는 이런류의 다소 빡빡한 공식 진로탐색 프로그램에 무게를 둔 것이 아니고,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봄가을 좋은 계절에 비수기 싼가격으로 여행다니도록 해주고 싶었고, 연휴나 휴가철에 가족들이 비싼 돈주고 고생하며 부대끼는 안좋은 기억을 반복하기 싫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어디선가 더 체계적인 진로탐색 프로그램이 제공된다면 환영할 일이겠지요.

주변에선 종종 저희 딸이 그 기간을 통해 모종의 홈스쿨을 했는지, 특별한 커리큘럼이 있었는지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알고보면 그 시절 아이의 일상은 도서관다니기, 강아지 기르기, 드라마 시청하기, 음악/미술학원 다니기, 원하는 책읽기, 사진기 익히기, 아빠와 함께 여행하기, 집안살림 돕기 등등이었답니다. 그 기간 동안 엄마가 학생이고 딸이 유사주부였기에 가끔 딸아이가 설겆이하면서 엄마에게 공부 좀 열심히 하라고 구박하며 고소해하는 진풍경도 있었습니다. @.@ 한가지 그 기간 동안 딸을 칭찬할 일이 하나 있었다면, 52주간 서울의 교회로 개근하며 중고등부 예배반주자의 자리를 잘 지켰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중엔 늦잠꾸러기였지만 주일엔 책임감에 잠을 설치며 나섰지요.

물론 고교 이후의 진로를 모색하면서 유학이나 특목고 같은 소위 최상위 옵션도 리서치는 해봤고, 예고나 외고 같은 좁은 선택도 살펴봤고, 로드스콜라 같은 대안학교나 홈스쿨에 대한 정보도 찾아서 접했지요. 헌데 결론은… ㅋㅋ 인문계 공립학교 배정을 통해 집에서 가깝고 교복 예쁜 곳에 진학하는 것이었는데 교복은 그다지 예쁘지 않은 곳으로 배정을 받았고, 지금까지 별탈없이 여고생활을 나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다시 평범한 고교에 진학하면서 아이는 아이대로 저는 저대로 조금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지난 일년을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었는데 혹시 너무 헐렁하게 허송세월을 한 것은 아닌지 하는 다소의 불안함이었다고 할까요? 이해가 되시죠? 그러나 그런 다소의 찜찜함은 딸아이가 고교에서 한 학년을 보낸 이후 우연히 가지게 된 심야 대화 중에 상쾌하게 씻을 수 있었습니다.

“아빠, 다시 학교를 일년 다녀보니 같은 반 동생들이나 한학년 먼저 달려가고 있는 친구들 모두 너무 개념없이 선생님들이 하라는 대로 학교생활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 얘네들 분명히 입시 앞두고, 대학에 가서, 아니면 대학 졸업 후에, 직장 생활하다가 불현듯 멘붕되어서 인생고민하면서 멍때리는 시간이 있을 거 같아. 근데 나는 작년에 미리 멍때리는 시간 넉넉히 가졌으니 참 다행인 것 같아.”

아빠인 저도 이내 동의가 되었습니다. 그 기간을 통해 아이가 이제 서툴지만 자기를 해석할 수 있는 힘도 생겼고, 실패를 용인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고, 부모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도 익혔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경험하고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생겼으니까요. 물론 올바른 인지가 합당한 실천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마땅히 필요한 추가의 시간이 있을테지만, 성숙을 향한 방향이 잡혔다는 데에서 참 안심이 되었습니다.

딸아이는 고2 초에 원하는 전공을 정하고 거기에 맞는 학업계획을 세워서 일년을 지냈고 바야흐로 이제는 고3 수험생이긴 합니다만, 우리 딸의 입시성패 여부와 관계없이 [꽃:친]은 진행할 예정이랍니다. 이런 프로그램마저 대입전략의 하나로 전락하는 것은 진정 비추입니다. 1차적으로는 우리 아이들이 꽃다운 나이에 사회가 조장한 앞서가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헛된 염려를 뿌리치고 그 시절을 한껏 누리도록 하는 데에 있습니다. 자기 인생의 과제를 스스로 설정하고 의연히 감당해나가는 것은 또다른 이야기이겠지요. 다행히 딸아이가 입시도 잘 치러낸다면 유급조교로 알바를 뛰게 할 심산이긴 합니다. ^.^

개나리 진달래같은 봄꽃도 있지만, 국화 코스모스같은 가을꽃도 있지요. 아이들의 아름다움이 제대로 피어나는 시기는 제각각입니다. 국가가 공교육이라는 제도로 생물학적으로 동년생들을 모아서 동일한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평가해서, 지적인 학습에 두각을 나타내는 개나리같은 아이들만을 모아서 두고두고 기회와 특권을 몰아준다는 것은 정의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국가의 효율이 개인의 인권을 빼앗으면 안될 일이지요. 또한 의무교육조차도 그 시기를 국가가 일률적으로 특정하는 것도 과잉금지에 위배되는 일일 것입니다. 효과적인 통제가 사명이라고 길들여져온 교육당국이야 다소 당황스럽겠지만 진학시기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도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당연한 권리라고 봅니다.

그간 월반은 허용도 되고 칭찬의 대상이었지만, 진학보류나 휴학은 주홍글씨(소위 꿇는다는 부정적 표현)처럼 여겨지던 문화는 이제 도리어 후진적 습속이었다라고 성찰하는 시기가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들 서둘러 대학에 가서 휴학, 해외연수, 인턴십, 졸업유예, 취업준비 등으로 다시 시간을 죽이고 있는 현실이 한편으론 씁쓸하게 보입니다. 아무튼 부모된 우리의 인식과 태도의 문제일 뿐, 아이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선택은 자유라는 생각이 제일 중요합니다. 기대하는 바 어쩌면 이런 모색들이 입시서열주의라는 제국의 질서에 의미있는 균열을 내는 영악한 실천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심야에 글을 적다보니 길어졌습니다. 조금 감성적인 내용은 걸러 들어주시고, 주변에 비슷한 고민을 하면서 길을 찾는 분이 계시다면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다만 이런 프로그램을 또하나의 변형된 진로사교육으로 여기시는 분들의 과도한 관심은 절대 사절하겠습니다. ㅎㅎ 아무래도 아이들보다는 부모님들 인터뷰를 잘 해야 할 것 같아요.

P.S 1. 참… 한가지 미리 팁을 드린다면, 이 프로그램에 참석하려는 중학졸업예정자는 졸업만 하시고 고교배정은 신청하지 않으셔야 한답니다. 아마 학교행정실에서는 당황스러워하실테지만 내년에 다시 배정신청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 없으니 차근차근 챙기시면 됩니다. 혹시 배정을 받은 후에 뒤늦게 합류하시는 경우, 배정받은 고교에 자퇴신청을 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니 미리 감안하시기를 바랍니다.

P.S 2. [꽃다운친구들]의 영문 명칭은 KOCHIN(꽃친:꼬친:코친)입니다. 풀네임은 [KOrea Creative Half-time Inter-school for Next-generation]입니다. [다음세대를 위해 창의적인 휴식을 제공하는 학교간 과정]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이런 작명을 하고 있노라면, 늘 아내는 또 병구스러운 일을 하고 있다고 놀립니다. "

  1. 김지연 2015.09.21 11:33 신고

    조만간 중졸학력 획득할 딸의 진학을 고민하며 온가족이 머리를 쥐어뜯던 중에
    간신히 너무 늦지는 않게 꽃친을 알게 되었네요~~~
    계속해서 심야에 글 많이 써주시길 기대합니다. 정말 재미있게 공감하며 읽었구요,
    허락없이 제 카스에 마구 공유하였습니다~^^
    광팬 조짐 나타나는 중입니다.



    • BlogIcon 병구사마 2015.09.22 23:01 신고

      윽... 종종 심야에 글을 써야겠군요. ^.^ 진솔한 답글을 달아주시니 마음에 한결 힘이 돋습니다. 이따금 들러주셔서 응원해 주세요.

  2. 박경진 2016.03.21 13:25 신고

    제 아이는 아직 초4입니다.. 3월초 우연히 인터넷 기사를 접하고 관심이 생겼답니다.
    그리고 아이가 괜찮다면 꽃친이 되게 하고 싶은 엄마이기도 합니다..(아직 6년 후에 일이지만..^^;;;)
    우리나라 공교육이나 사교육에 아주 약간의 불만을 가진 엄마이기도 하구요..
    물론 꽃친이 그때까지 존재한다면 말이지요..
    처음의 빛이 바래지 않고 끝까지 잘 이어나가시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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